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8일 워싱턴 연방의회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왼쪽)과 폴 라이언 하원의장(오른쪽)의 박수를 받으며 취임 후 처음으로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난 28일(현지시각)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은 포장만 달라졌을 뿐, 내용은 그대로였다. 대외정책이든 국내정책이든 기본 기조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연설, 더 나아가 선거공약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의회 연설에서 ‘미래’, ‘염원’, ‘영감’, ‘통합’ 등의 호소력 있고 미래지향적인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취임식 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실패를 강조하기 위해 ‘살육’, ‘황폐’ 등 미국의 어두운 모습을 부각하려 했던 것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다. 미국 언론들은 이를 두고 “기조가 부드러워졌다”며 일제히 환영했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자신의 정책 기조를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를 ‘과거 실패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에서 ‘미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으로 바꿨을 뿐이다.
안보·대외정책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로 상징되는 ‘미국 이기주의’와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공화당의 전통적 안보관, 그리고 실용적 현실주의를 버무려놓았다. 취임식 내용 그대로다.
그는 “내 일은 세계를 대표하는 게 아니다. 내 일은 미국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을 포기한 고립주의 노선을 표방하는 것처럼 비치지만, 다른 대목에선 “우리의 대외정책은 세계에 대한 직접적이고도 강력하며 의미있는 관여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해 여전히 미국의 ‘글로벌 패권’을 포기하진 않았다.
상충되는 욕구들이 모아진 곳이 동맹들의 방위비 분담 증액 요구와 자국 국방비 대폭 증액이라고 할 수 있다. 동맹을 통해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되, 방위비 분담은 늘리도록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이번에 증액 대상으로 태평양 지역 동맹까지 거론해, 한국이나 일본도 미국 요구를 비켜가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 국방비 대폭 증액을 통해 ‘힘을 통한 평화’ 유지라는 구호를 내걸었지만, 실제로는 팽창주의적인 공화당 매파들의 정치적 욕구를 충족해주면서, 동시에 군수산업을 성장시켜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복선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역과 통상 분야에서도 “평평한 운동장”을 재차 강조해, 불공정 관세와 환율조작에 강력하게 대처할 것임을 예고했다. 특히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및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에 대한 불공정성을 직접 거론해 중국과 나프타가 1차적인 타깃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이민정책과 관련해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이민개혁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며 그동안의 엄격한 이민정책을 수정할 것처럼 밝혔다. 하지만 그는 대안으로 “저숙련 노동자를 받아들이는 현 이민제도를 바꿔 ‘메리트 기반 시스템’(자격점수제)을 채택하겠다”고 얘기했다. 실질적으로, 이민자 수를 대폭 축소하겠다는 뜻이다.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 규제완화, 법인세 인하, 오바마케어 폐지 등의 방침도 그대로 유지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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