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기자회견 중 질문하기 위해 손을 드는 기자들 중 한 사람을 지목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이례적인 75분간의 기자회견을 통해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러시아 스캔들’로 인한 낙마 등 국정 난맥상에 대한 언론의 비판에 작심한 듯 격정과 분노, 변명을 쏟아냈다. 지난달 20일 취임 후 가장 긴 시간의 회견이었고, 모든 문제가 다 올라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가정부’ 고용 논란으로 낙마한 앤드루 퍼즈더를 대신할 새 노동장관 후보 알렉산더 아코스타를 ‘간략히’ 소개한 뒤 기자회견장은 최근 현안들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면서 갑자기 ‘취임 한 달 회견’으로 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 언론이 고의로 만들어낸 ‘가짜 뉴스’라거나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엉망진창 상황’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다움’ 대신에 선거운동 시절의 후보자 같은 몸짓과 언어로 언론들을 공격했다. 러시아와의 유착 의혹을 제기해온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등 언론사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며 “(정보기관의) 정보 유출은 사실이고, 뉴스는 가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여러분(언론)이 러시아에 대해 원하는 대로 말해도 된다”면서 “그러나 그건 허구의 가짜뉴스”라고 주장했다.
특히, <시엔엔>(CNN) 기자가 “대통령께서 우리 회사를 ‘가짜뉴스’라고 했는데…”라며 질문을 시작하자, 말을 가로채며 “(그러면) 말을 바꾸겠다. ‘정말 가짜뉴스’”라고 면박을 줬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기자들에겐 “조용히 하라”“자리에 앉으라”며 윽박지르기도 했다.
그는 또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혼란들을 오바마 대통령이 물려준 ‘엉망진창 상황’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국내뿐 아니라, 중동, 북한 문제 등 외교문제도 오바마의 유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엉망진창 상황’을 물려받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잘 조율된 기계”처럼 잘 돌아가고 있으며,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걸 해 낸 대통령은 유례가 없었다”고 자찬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 흑인 여기자가 ‘도심 빈민가 문제 해결을 위해 흑인·히스패닉 의원 모임도 참여시킬 것이냐’고 묻자 “그들이 당신의 친구냐.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말해 인종 차별성 발언 논란까지 낳았다. 미 의회 흑인의원모임(블랙 코커스) 소속 의원들은 반발했다.
극도의 혼란을 불러온 반이민 행정명령에 대해선 “법원이 나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옹호했다. 플린 전 보좌관의 러시아 유착 의혹에 대해선 “러시아 쪽과 접촉하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면서도 “알았다면 대화를 하라고 지시했을 것”이라며 감쌌다. 다만,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심했다고 생각한 듯 “내가 호통치고 발광하는 게 아니다. 단지 당신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변명하기도 했다.
언론들은 트럼프의 이날 기자회견에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시엔엔>은 ‘트럼프의 거친 기자회견-역사상 놀라운 순간’이라며 유례를 찾기 힘든 회견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놀랄 만한 일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사안에 대해 다 건드렸고, 불만이 가득했다”고 평가했다. <뉴욕 타임스>는 “백악관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비정상적으로 원색적이고 분노에 찬 방어로 일관됐다”고 비난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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