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공격적으로 보도를 못합니까?”(기자들)
“행정부에 더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면 나가라.”(편집국장)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보도를 놓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내홍을 겪고 있다. 일부 기자들은 트럼프에 대한 보도가 지나치게 무뎌졌다고 지적하며 그 배후에 사주 루퍼트 머독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신문을 소유한 ‘뉴스 코퍼레이션’을 언론재벌 머독이 갖고 있고, 머독과 트럼프는 친밀한 사이다.
13일 <월스트리트 저널>의 제라드 베이커 편집국장이 최근 편집방향에 불만을 품은 기자들과 1시간30분 동안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만나,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고 <뉴욕 타임스>가 참가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베이커 국장은 “우리가 트럼프에 대해 물러터졌다는 (회사 내부) 글을 보고 짜증이 났다”며 “오히려 (트럼프에 공격적인) 다른 신문들이 객관성을 잃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자들의 불만은 2주일 전 베이커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에 관해 기사를 쓸 때 “무슬림이 다수인 7개 국가”라는 표현을 피하라고 에디터들에게 메모를 보내면서 고조됐다. 7개 국가는 ‘무슬림이 다수’여서 선정된 게 아니라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우려국 명단에 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만 베이커 국장은 이후 “‘무슬림 다수 국가’ 표현을 금지하는 건 아니다”라는 메모를 추가로 보내긴 했다.
하지만 수개월간 누적된 기자들의 불만은 이를 계기로 터져나왔다. 지난해 11월 트럼프가 트위터에 “수백만명”이 불법적으로 투표했다고 주장했을 때, 이 신문은 트럼프의 말이 부정확하다는 지적도 없이 그의 말을 그대로 1면 머리기사 제목으로 뽑았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또 지난주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22년간 재직했고, 차기 편집국장 후보로 꼽혀온 리베카 블루먼스틴 편집부국장이 <뉴욕 타임스>로 이직해 기자들의 사기는 더욱 땅에 떨어졌다. 많은 기자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우려를 공유했다. 한 기자는 “우린 진실을 캐고 공격적으로 새 행정부에 관해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썼다.
베이커 국장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언론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만 반복했다. 그는 “새 행정부가 언론과 전쟁을 치르고 싶어하는데 <월스트리트 저널>이 당사자가 되면 안 된다”며 “신문이 (행정부와) 대결적으로 보도를 하면 불신만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루퍼트 머독(왼쪽)과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 AP AFP 연합뉴스
<뉴욕 타임스>의 미디어 칼럼니스트인 짐 루텐버그는 14일 ‘트럼프-머독 커넥션의 위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머독의 친밀한 사이가 저널리즘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라고 되물었다. 트럼프의 맏딸 이방카는 지난해 12월까지 10대인 머독의 두 딸의 3억달러(3400억원)에 이르는 재산을 관리해주는 5인 신탁위원회의 일원이었다. 머독은 이방카가 남편 재러드 쿠슈너와 연애하다 잠깐 헤어졌을 때 자신의 요트로 불러 다시 맺어주기도 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