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의 선임정책고문 스티븐 밀러가 1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이스트 룸에 들어서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난민 행정명령’과 멕시코 국경장벽 설치 등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의 배후에는 31살의 백악관 선임 정책고문 스티븐 밀러가 있다. 11일 <뉴욕 타임스>는 그를 트럼프 정책의 배후에 있는 ‘광신자’, <워싱턴 포스트>는 ‘핵심 기술자’라고 부르며, 고교생 때부터 강경 보수파의 ‘전사’였던 그가 백악관에 입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도했다.
유대인인 밀러는 캘리포니아의 샌타모니카 고교를 다닐 때부터 보수 성향의 라디오 방송에 자주 전화해 학교가 ‘충성의 맹세’를 암송하도록 요구하지 않는 것을 비판했다. 9·11 테러 뒤 그는 “오사마 빈 라덴이 샌타모니카 고교에 오면 매우 환영받는 느낌을 가질 것”이라고 학교 신문에 기고했다. 그는 특히 멕시코 출신 학생들에게 비판적이었다고 한다. 인종적 다양성과 자유주의 가치에 자부심을 가진 이 학교에서 밀러는 ‘왕따’였지만, 그의 열정으로 인해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밀러가 “적진에 있는 외로운 전사”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는 듀크 대학에 입학 뒤에도 다문화주의와 포용적인 이민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학교 신문에 자주 기고해 학생들의 분노를 사곤했다. 남성과 여성한테 동등한 임금을 지급하면 기업에 해가 된다며 남녀 임금 차이는 성차별과 관련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그는 ‘듀크 보수주의연합’에 가입했고, 여기서 극우 인종주의 운동인 ‘대안 우파'의 지도자 리처드 스펜서를 만나 교류했다.
대학 졸업 뒤에는 의원 보좌관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트럼프 대선 캠프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법무장관이 된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밀러는 세션스와 함께 강경한 이민정책 방안을 만들기도 했다. 지난해 트럼프 캠프에 합류한 뒤로는 트럼프의 주요 연설문을 작성했고, 취임사도 썼다. <뉴욕 타임스>는 밀러의 목소리인지, 트럼프의 목소리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고 했다. 밀러는 이번 ‘반이민 행정명령’ 작성에 깊숙이 개입했을 뿐 아니라, 국토안보부 등 부처들과의 사전 논의 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기습적으로 발표하도록 한 전략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황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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