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각) 그간의 발언을 뒤집고 ‘하나의 중국’ 정책을 존중한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이는 ‘중국의 힘’에 대한 현실적 인식을 바탕으로 미-중 관계를 더 이상 갈등 국면으로 치닫게 할 순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이 ‘시끄러운 중국 때리기’에서 갈등 관리에 기반한 ‘조용한 실리주의’로 나아갈 것을 예고한다.
미-중 관계의 금기를 깨뜨린 트럼프 대통령과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지난해 12월 통화 이후 미-중 관계는 ‘전략적 맞대결’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일만큼 살얼음판을 걸었다.항모 랴오닝호 함대 훈련, 미사일 배치 등 중국 쪽 무력시위 등으로 미-중 간 동북아 군사대치 국면마저 형성되기도 했다. 특히,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하나의 중국’ 정책 훼손에 대한 반발로 미국 쪽의 전화통화 요구를 계속 거부해왔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하기도 했다.
미국 쪽의 태도 변화에는 10일 예정된 미-일 정상회담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중 관계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 동승이나 골프 회동 등과 같은 화려한 의전이 ‘대중 포위 전략’을 펴는 것 아니냐는 중국의 의혹과 불신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미국 쪽이 우려했을 수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아베 총리를 상대로 예정된 호화로운 환대에 따른 후유증을 줄이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일련의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미-중 양쪽은 물밑 접촉을 통해 돌파구 마련을 모색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의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군사행동은 불필요’라는 유화적 메시지가 대표적이다. 또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도 지난 3일 전화통화를 하며 의견을 조율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플린 보좌관은 추이텐카이 주미 중국대사를 직접 만나 “건설적 관계를 희망한다”는 트럼프의 친서를 전달하며 달랬다. 이에 따라 미-중 정상 통화 직전인 9일 오전 백악관에서 ‘하나의 중국’ 정책 훼손에 반대하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이 참여하는 회의를 열어, 중국 쪽 요구를 수용하기로 최종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강경파’보다 ‘신중파’의 손을 들어줬다는 뜻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을 번복한 것은, 중국과의 협력 없이 미국 경제와 국제경제 체제를 지탱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미 정부 고위관계자가 “미-중이 차이점뿐 아니라 상호 협력 사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힌 점을 보면, 향후 미-중 관계를 ‘경쟁과 협력’이라는 전통적인 기본 틀로 끌고 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들 가운데 대중 강경파가 적지 않고, 트럼프 행정부도 국내 정치상 무역·통상·환율 등에서 중국에게 큰 폭의 양보를 얻어내야 할 상황이어서 언제든 갈등이 재연되거나 폭발할 가능성은 잠재돼 있다.
워싱턴 베이징/이용인 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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