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 비서실장인 라인스 프리버스(왼쪽)와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고문인 스티브 배넌이 26일 백악관 남쪽에 있는 대통령 전용 헬기에 탑승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극우 인종주의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스티브 배넌(64) 미국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고문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당연직 위원으로 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국가안보회의는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 등에 관한 최고회의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 배넌과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 등이 국가안보회의 수석회의에 당연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미 언론들이 보도했다. 또 당연직 위원이었던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합동참모본부장은 그들과 직접 관련된 이슈가 있을 때만 참석하도록 격을 낮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조처에 대해 “회의가 매우 효율적이 될 것이며 국가안보가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넌과 프리버스 등을 국가안보회의에 참석시키고, 국가정보국 국장과 합동참모본부장을 사실상 배제시킨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외교·안보에 있어서도 기존의 공식적인 정부 조직보다 ‘트럼프 측근’ 위주의 정책을 펴겠다는 것을 예고한 셈이다.
배넌은 외교나 안보 관련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극우매체 <브레이트바트>를 운영하며 인종주의 논란을 빚은 인물이다. 그는 무슬림 이민 반대 등 이른바 ‘대안 우익’의 주장을 앞장서 퍼뜨려왔다. 이슬람권 7개국 국민들의 미국 입국 금지 등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1주일 동안 서명한 극우적인 행정명령 배후에는 배넌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배넌을 국가안보회의에 앉힌 것은 외교·안보 문제에서 미국 우선주의와 인종주의 색채가 짙어질 것임을 시사한다. 배넌은 최근 “언론은 야당이며, 이 나라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당분간 입을 닫고 듣기만 하고 지내야 한다”고 말해, 주류 언론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 조처로 인해 배넌이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며, “실질 영향력 측면에서 보면, 배넌은 트럼프 행정부의 서열구조에서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보다도 도드라져 보인다”고 평가해 배넌이 ‘넘버 2’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처에 대해 공화·민주 양쪽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조시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당시 백악관 고문인 칼 로브의 국가안보회의 참가를 막았던 조시 볼튼은 국가안보회의에서 내리는 대통령의 결정은 “제복입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관련돼 있으며, 정치적 결정으로 더럽혀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황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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