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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600개 도시서 “트럼프 반대”…그녀들은 왜 고양이 모자를 썼나

등록 2017-01-23 01:04수정 2017-01-23 01:17

과거 트럼프 ‘pussy’(고양이) 발언 풍자
전 세계 600여개 도시 동시다발적 시위
2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위민스 마치(여성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분홍색 고양이 모자를 쓰고 피켓을 들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위민스 마치(여성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분홍색 고양이 모자를 쓰고 피켓을 들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과 의회를 잇는 펜실베이니아 거리. 21일(현지시각) 오전, 길이 2.7㎞의 이 거리가 ‘분홍색 고양이 모자’를 쓴 여성들로 가득 찼습니다.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벌인 지 불과 하루만의 일입니다. 여성들은 왜 거리에 나섰을까요? 그리고 왜 하필 ‘분홍색 고양이’ 모자를 쓰고 모였을까요?

■ 하와이 할머니의 ‘나라 걱정’에서 시작된 ‘위민스 마치’

이번 시위의 발단은 지난해 11월8일 치러진 미국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국 하와이에 거주하는 은퇴 변호사이자, 4명의 손주를 두고 있는 테리사 슈크 할머니는 대선 결과를 보고 크게 낙담했습니다. 과거 여성차별적 발언과 숱한 성폭행 의혹에 시달렸던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기 때문입니다. 슈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너무 큰 충격과 불신에 휩싸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거 결과가) 우리 자신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습니다. 선거 다음날인 9일 밤, 슈크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트럼프 취임식 다음날인 2017년 1월21일, 워싱턴에서 반대 시위를 하자’는 취지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처음 초대장은 페이스북 친구인 지인 40여명에게만 보냈습니다.

‘위민스 마치’를 처음 제안한 테리사 슈크.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위민스 마치’를 처음 제안한 테리사 슈크.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누리집 갈무리
다음날, 슈크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불과 하루만에 1만여명의 사람들이 시위 참가 의사를 밝혀온 것입니다. 같은 날 뉴욕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디자이너 밥 블랜드 역시 여성들의 시위를 제안했습니다. 이들의 제안에 미 전역의 여성단체가 함께 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위민스 마치’는 전국적으로 확산됐습니다. 21일 행진에 참여한 슈크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연대하고, 다른 미래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모였다”며 “앞으로 4년 동안에도 다른 미래를 만들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위민스 마치(여성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분홍색 고양이 모자를 쓰고 피켓을 들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위민스 마치(여성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분홍색 고양이 모자를 쓰고 피켓을 들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 트럼프에서 시작된 ‘고양이 모자’

그렇다면 위민스 마치에 참여한 시민들은 왜 ‘핑크색 고양이 모자’를 쓰고 모였을까요?

지난해 10월, 대선을 불과 한달여 앞두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한 트럼프의 ‘음담패설 동영상’은 많은 여성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지난 2005년 <엔비시>(NBC)DML '액세스 할리우드' 진행자인 빌리 부시에게 “당신이 스타라면 여성들의 ‘그곳’을 움켜쥘 수 있다”(Grab them by the pussy)라고 말한 게 그대로 녹음돼 있었기 때문이죠. 비판이 거세졌고, 동영상 공개 뒤에는 과거 트럼프에게 성희롱·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증언도 잇따랐습니다.

‘고양이모자 프로젝트’ 누리집 갈무리
‘고양이모자 프로젝트’ 누리집 갈무리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한 누리꾼은, 속어로 트럼프가 언급한 여성의 성기(pussy)와 발음이 같은 ‘고양이’(pussy) 귀 모양의 털모자를 쓰고 시위에 참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색상은 여성 운동의 상징인 분홍색으로 하자는 제안도 나왔죠. 이 아이디어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고양이모자 프로젝트’(Pussyhat Project)도 시작됐습니다. ‘고양이 모자 프로젝트’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제이나 츠바이먼(38)과 크리스타 서(29) 등 두 여성이 대선 이후인 지난해 11월부터 추진해 왔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누리집을 통해 친절하게 고양이 모양의 털모자를 뜨는 법을 알려주며 시위대의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시위 당일에는 모자가 없는 사람들에게 직접 분홍색 모자를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21일(현지시각) 저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위민스 마치’ 시위에서 한 시민이 분홍색 털모자를 쓴 경찰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각) 저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위민스 마치’ 시위에서 한 시민이 분홍색 털모자를 쓴 경찰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21일, 많은 사람의 아이디어가 모여 시작된 ‘위민스 마치’는 워싱턴에만 50만명의 인파가 운집한 것을 비롯해 전 세계 600여개 도시에서 수백만명의 시민들이 참여하며 동시다발적으로 열렸습니다. 이번 시위에는 미국 여성 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비롯해 배우 스칼렛 요한슨, 엠마 왓슨, 팝 가수 마돈나, 앨리샤 키스 등 유명 인사도 함께 동참했습니다. 마돈나는 검정색 고양이 모자를 쓰고 연단에 올랐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와 맞붙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역시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의 가치를 위해 일어서고, 말하고, 행진하는 것은 어느 때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함께 하면 더 강하다”는 그의 대선 구호를 함께 적어, 시위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2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위민스 마치(여성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분홍색 고양이 모자를 쓰고 피켓을 들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위민스 마치(여성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이 분홍색 고양이 모자를 쓰고 피켓을 들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한편, 이날 시위에 참여한 반려 동물들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2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에 반대해 전 세계에서 일어났던 여성행진에 개들도 동참해 ‘짖었다’”고 전했습니다. 트럼프 실언의 희생양이었던 진짜 ‘고양이’를 비롯한 반려 동물들은 주인과 함께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강아지들’, ‘진짜 개는 성기를 움켜쥐지 않는다’와 같은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이제는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간 존 케리 전 국무장관도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시위에 등장해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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