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각) 취임사 및 이날 밝힌 ‘6대 국정기조’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분명하게 천명했다.
백악관이 이날 누리집을 통해 제시한 6대 분야 국정 우선과제는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 △미국 우선 외교정책 △일자리 회복과 성장 △미군 재건 △법질서 구축 △모든 미국인을 위한 무역협정 등이다. 미 국익 중심과 강력한 미국, 4%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통한 중산층 복원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과 4% 성장 백악관은 국정기조의 첫머리에 “미국 내 에너지 생산을 늘려 ‘에너지 독립’을 추진한다”는 대목을 올렸다. “50조달러어치로 추정되는 미국 내 셰일가스와 원유, 천연가스를 적극적으로 시추하면 미국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외국 에너지 수입도 줄여 물가안정과 고용창출을 동시에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생기는 돈을 도로, 학교 등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에 활용하면 일자리가 또다시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로 들어간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 ‘기후행동계획’ 등과 같은 불필요한 정책은 없애겠다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의 첫 열쇠를 이 부분에서 찾겠다는 뜻이다. 백악관은 이를 통해 “10년 동안 2500만개 일자리 창출과 연 4% 성장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경제 부문 성적이 좋다는 버락 오바마 재임기간 8년 동안 창출한 일자리가 모두 1560만개이고, 지금 미국 경제가 지표상 거의 완전고용 상태인데다 경기 호황인데도 연간 성장률은 2% 안팎이다. 한국 경제규모(GDP)의 13배가 넘는 미국과 같은 초거대경제권에서 4% 성장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이 2.5%(한국은행 기준)이다. 또 미국이 자국 원유생산량을 늘려 원유수입을 억제하면 중동의 전략적 가치가 약화되고, 중동 동맹국과의 관계도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개인소득세와 법인세를 모두 낮추겠다고 국정기조에서 밝혔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재정압박, 복지제도 위축, 소득격차 확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는 국내 사회정책과 관련해 법질서 확립을 강조하면서 총기 소지 권리 보호와 “폭력 범죄 기록을 가진 불법이민자의 추방”을 국정기조에 적시했다. 이민자 단속과 반트럼프 시위 격화 등에 대한 경찰의 강경 대응이 겹칠 경우 심각한 사회갈등으로 휩싸일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 미국 중심 외교·무역 백악관이 공개한 국정기조를 살펴보면, 외교 및 군사 정책에선 ‘미국의 패권 유지’를 목표로, ‘힘에 의한 평화’를 구체적 접근법으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군사 분야에서 “우리의 군사적 (세계) 지배력이 의심받아선 안 된다. 다른 나라가 우리의 군사력을 능가하도록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의 ‘시퀘스터’(자동예산삭감 조치)를 폐지해 국방비를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외교·국방 노선이 흔히 알려진 것처럼 다른 나라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고립주의’가 아니라, 공화당의 전통적인 외교·안보 정책에 더 가까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정책기조는 다분히 중국과 러시아를 의식한 조처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기조는 자칫 위협을 느낀 상대 국가들도 국방비를 증액하게 하고, 이에 따른 세계적 군비경쟁을 초래하는 ‘안보 딜레마’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오히려 국제정세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셈이다. 백악관은 ‘강한 방위’의 맥락에서 “이란, 북한과 같은 국가들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최첨단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개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무역 분야에선 예상대로 ‘엄격하고 공정한’(tough and fair) 무역협정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재협상이나 탈퇴를 재확인했다. 백악관은 “실패한 무역협정들을 거부하고 재검토하는 것 외에, 무역협정을 위반하고, 미국 노동자들에게 해를 끼치는 국가들에 철퇴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차적 타깃은 중국이 될 게 확실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안전지대에 있다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중국 내수시장이 이미 상당히 발달해 있고,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면 미국 물가도 오르며, 중국도 보유중인 미국 국채를 매도하거나 미국 기업 제품 구입을 거부하는 등 반격 수단이 풍부하다. 이런 일방주의가 실효성을 내기는커녕, 무역전쟁과 안보 불안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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