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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워싱턴 르포] 반트럼프 50만 ‘여성 행진’…2개의 미국

등록 2017-01-22 20:07수정 2017-01-23 09:33

취임식 다음날, 워싱턴 항의 시위로 덮여
21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과 의회를 잇는 워싱턴 펜실베이니아가에 트럼프 항의 시위인 ‘위민스 마치’(여성행진)가 열려 참여한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모여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과 의회를 잇는 워싱턴 펜실베이니아가에 트럼프 항의 시위인 ‘위민스 마치’(여성행진)가 열려 참여한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모여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의사당에서 취임선서와 연설을 마친 뒤 ‘환영 퍼레이드’를 벌였던 거리가 다음날인 21일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50만명의 시위자로 가득 찼다. 트럼프 시대의 출범에 환호했던 취임식 분위기와 트럼프에게 반대하는 50만 시위대의 풍경은 극명하게 대조를 이뤄, 녹록지 않은 트럼프 시대의 미래를 예고하는 듯했다.

21일 워싱턴 의사당 근처 ‘인디펜던스 애비뉴’ 근처에서 열린, 트럼프 항의 시위인 ‘위민스 마치’(여성행진)는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찼다. 이날 시위는 트럼프 대통령의 여성비하 발언과 낙태권 부정 등에 항의하는 뜻으로 여성 인권 옹호 차원에서 수십개 단체가 연합해 조직했지만, 사실상 미국 내 풀뿌리 조직들에 내려진 ‘총동원령’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성단체, 동성애·흑인·이민권리 옹호 및 환경보호 단체뿐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단체 등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깃발과 손팻말을 들고 참여했다.

행진에 앞서 열린 행사에는 민주당의 키어스턴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을 비롯해 팝 디바 마돈나,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배우 스칼릿 조핸슨, 애슐리 저드 등 유명인들이 대거 동참했다. 행진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된 스타이넘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를 분열시키지 말라”고 외쳤다. 특히 마돈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여성 혐오증과 성희롱 전력을 조롱하는 ‘고양이 모자’를 쓰고 예고 없이 시위에 참가한 뒤 연설무대에 올라 “이 끔찍한 어둠의 순간이 우리를 ××(욕설) 각성시키고 있다”며 “우리는 여성으로서 폭압의 새 시대를 거부하고, 저항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돈나는 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혼자도 아니며, 주장을 굽히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의 결속에는 힘이 있다. 반대 세력은 이러한 진정한 연대 앞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와 맞붙었던 힐러리 클린턴 전 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날 트위터에 “우리의 가치를 위해 일어서고, 말하고, 행진하는 것은 어느 때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함께하면 더 강하다’는 그의 대선 구호를 함께 적어 이날 시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어 시작된 행진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이어졌다. “민주주의를 구하라”, “여성 인권도 중요하다”, “트럼프는 물러가라” 등 구호는 물론 “파리 기후변화 협약 존중”, “사랑이 증오를 이긴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권리” 등 시위자들이 미리 준비한 손팻말이나 몸치장도 다양했다.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과 함께한 ‘엄마 부대’도 눈에 많이 띄었다.

시위대가 행사장에서 의회 쪽으로 방향을 틀며 지하도로를 지나자 고가도로에 있던 시민들이 손을 흔들거나 박수를 쳤다. 시위대들은 호루라기를 불고 환호성을 지르며 화답했다. 곳곳에 대기중이던 기마 경찰들은 시위대를 향해 미소를 지었고, 시위대는 기마병이 탄 말들을 쓰다듬으며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하는 등 시위대와 경찰 간의 긴장감도 옅었다.

시위 참석자들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절망감은 깊었다. 여성행진에 참석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엘리자베스 제이컵스(64)는 백인임에도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백인을 다시 위대하게’와 마찬가지다. 트럼프 시대에 희망이 없다. 미래도 없다”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트럼프의 표적이 되다시피 한 무슬림들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무슬림 출신으로 메릴랜드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자바네(33)는 “트럼프를 그냥 두면 정말 무슬림들을 쫓아낼 것”이라며 “분명히 말하건대,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무슬림 입국 금지는 전적으로 편견에 기초한 것”이라며 “아무 문제가 없는 이민자 사회가 어디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워싱턴 시위에는 미 전역에서 비행기 또는 자동차를 타고 먼 길을 달려온 이가 많았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디 콜린스(62)는 “플로리다에서 온 친구와 같이 가고 있다”며 “다음 세대를 위해 가만있을 수 없다”고 했다. 캐나다에서 친구 8명과 워싱턴에 왔다는 로라(43)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인에게 연대의 뜻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엔엔>(CNN) 방송은 이날 워싱턴을 제외하고도, 뉴욕 10만명, 시카고 12만5천명 로스앤젤레스 10만명, 보스턴 10만~12만명 등 미국 전역에서 100만명이 참가한 ‘반트럼프’ 시위가 열렸다고 보도했다.

이날 시위의 반대편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에 열광하는 미국 사회의 또다른 단면이 있었다. 21일 ‘반트럼프’ 구호로 가득 찬 의사당 인근에는 취임식이 열린 20일에는 트럼프에 대한 환호로 가득 찼었다. 취임식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특유의 ‘엄치 척’ 동작을 하며 등장할 때, 취임식 참석자들은 “유에스에이”(USA)를 외치며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영했다. “유에스에이”는 미국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공화당원들이 좋아하는 구호다. 힐러리 클린턴이 화면에 비칠 때는 “구속하라”고 외쳤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등장할 때는 “거짓말쟁이”라는 외침이 물결처럼 참석자들 사이에 번졌다. 척 슈머 미국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연설을 하자 “내려와”라는 야유가 쏟아졌다. 의사당 취임식장에서 만난 모니카 디온(45)은 오클라호마주에서 18시간을 운전해 달려왔다며 “트럼프가 이 나라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시대, ‘2개의 미국’이 출범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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