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후보자가 11일 워싱턴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신화 연합뉴스
오는 20일(현지시각)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 후보자는 11일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 인상, 대중국 강경책 등 대체로 트럼프 당선자가 선거 때 했던 발언을 충실하게 따르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한국·일본의 자체 핵무장론이나 ‘하나의 중국’ 정책, 러시아 문제에 대해선 트럼프와 다른 입장을 취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은 강경 기조 속에 당분간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미 동맹과 관련해 틸러슨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트럼프 정부에서 강화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예상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그는 동맹의 의무와 약속을 강조한 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모른 척할 수는 없다”며 강한 대응을 시사했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이 미국의 안보에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방위비 분담의 큰 폭 인상을 요구해왔는데, 틸러슨의 발언은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새 행정부의 방위비 분담 인상 요구가 상당히 거셀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틸러슨은 트럼프가 한때 거론했던 ‘한국과 일본의 자체 핵무장 허용’은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국무부의 핵심적 역할 가운데 하나는 핵 비확산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지구상의 핵무기 수를 줄여야 한다는 우리의 약속에서 물러설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북핵·북한 문제와 관련해선, 미국이 직면한 위협으로 중국, 러시아, 급진적 이슬람에 이어 “이란이나 북한과 같은 ‘대항 세력’(adversary)들이 국제규범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세계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를 대략 다섯번째 정책 우선순위에 위치시켰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긴 했지만, 북한을 ‘적’(enemy, foe)이라 표현하지 않고, 중립적 표현인 ‘대항 세력’이라고 지칭한 점은 주목된다.
그는 북핵 해결법으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중국 압박’을 방편으로 내세웠지만, 중국의 그동안 역할을 “공허한 약속”이라고 비판해 대중 압박을 더욱 강화할 것임을 내비쳤다. 특히 그는 “북한 경제는 90%를 중국에 의존한다”며 북한과 관련없는 중국 기업도 제재 대상에 올린 ‘세컨더리 보이콧’(3자 제재) 실시 방침을 강하게 시사했다. 세컨더리 보이콧이 실시되면, 중국 기업의 피해가 불가피해 미-중 간 갈등이 커질 수 있다.
틸러슨은 북한 문제 이외에도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과 경제·무역 관행을 놓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는 특히,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은 국제기준을 존중하지 않고 분쟁지역을 불법적으로 취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역 문제와 관련해서도 “우리의 지식재산권을 훔치고 디지털 영역에서도 공격적이며 확장주의적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틸러슨은 중국에 대한 비난 수위를 조절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하나의 중국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바꿀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며,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트럼프의 통화 이후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폐기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불식했다. 그는 또 “미-중의 경제적 안녕은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며 “불일치하는 이슈가 있다고 생산적인 협력의 영역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틸러슨은 ‘친러시아 성향’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의도적으로 대러시아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해킹 의혹과 관련해 “자신들(러시아)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으며,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대해선 “군사적 대응을 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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