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취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발언하고 있다. 뉴욕/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 승리 이후 처음 열린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지난 대선 때 민주당전국위원회 해킹 배후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러시아를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는 러시아가 자신의 약점을 쥐고 있다는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 기자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고함을 지르며 질문을 받지 않는 등 ‘러시아의 대선 해킹 및 자신의 성매매 의혹’ 기사 등을 보도한 언론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 당선자는 11일(현지시각)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에서 열린 대통령 당선자 기자회견에서 “해킹에 관한 한, 러시아가 배후라고 생각한다”며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사실을 인정했다. 지난 6일 트럼프는 국가정보국(DNI)을 비롯한 정보기관장들에게 이와 관련된 보고를 받은 뒤 성명을 내 러시아가 해킹의 배후에 있다고 밝혔지만, 공식 석상에서 본인의 말로 이를 직접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곧이어 “미국은 러시아 외에도 다른 국가나 사람들에게 해킹 공격을 받는다”, “최근 2200만명의 이름이 해킹당했는데, 그건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중국이 한 것”이라고 말하는 등 사안의 심각성을 축소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는 “푸틴이 나를 좋아하는 건 자산”이라고 주장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 숨기지 않았다.
트럼프는 이어 대통령 취임 이후 공적 업무와 개인 사업 사이의 이해충돌을 피하기 위해 두 아들에게 사업을 전적으로 맡긴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장 옆 책상 위에 서류 뭉치를 잔뜩 쌓아놓고 “트럼프 그룹 경영권을 아들들에게 넘기기 위해 서명한 서류들”이라고 강조하는 ‘쇼맨십’도 보였다. 그러나 트럼프가 취임한 뒤에도 두 아들의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충돌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또 멕시코와의 국경지역에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예정대로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폐기 대상 1호로 꼽은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에 대해서도 이를 대체할 법안 역시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기자회견에선 트럼프의 발언 내용보다 ‘러시아 게이트’ 관련 의혹 보도에 대해 트럼프가 보인 반응이 더 주목받았다. 전날 <시엔엔>(CNN) 방송 등 미 언론들은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을 토대로 러시아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뿐 아니라 트럼프에 불리한 정보도 수집하고 있었으며, 여기에는 성매매 동영상 등 트럼프의 약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민감한 정보도 포함돼 있다는 의혹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정보기관이 거짓 정보를 밖으로 유출시킨 건 수치스런 일”이라며 관련 내용을 전면부정했다. 정보기관 문건 전문을 공개한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에 대해선 “실패한 쓰레기더미”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질문을 하려던 <시엔엔>의 짐 애코스터 기자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당신 회사는 형편없다. 무례하게 굴지 말라. 당신들도 가짜 뉴스”라며 질문을 받지 않았다. <시엔엔>은 회견 뒤 “정부 내부의 일에 대해 보도하는 건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가 보호하는 권리의 핵심”이라며 “우리 보도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는 공식 입장을 통해 트럼프의 발언을 강하게 반박했다.
트럼프는 이날 ‘러시아 스캔들’을 제외하곤 대외정책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북핵·북한 문제도 꺼내지 않았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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