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2010년 8월3일 미국 워싱턴 상원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미국의 대표적인 현실주의적 대북 협상파인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북한과 적극적인 협상에 나서되, 협상 실패에 대비해 북한 미사일의 공해상 격추와 같은 ‘플랜 비(B)’(최악 상황 대비 계획)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이 최종단계에 이르렀다’는 북한의 신년사 발표 이후, 미국 협상파들도 ‘플랜 비’를 공개 거론할 정도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증가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페리 전 국방장관은 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 주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인내의 시간은 끝났다”며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페리 전 장관은 북한 핵무기를 포기하게 하는 협상은 “시간 낭비일 뿐”이라며, “북한은 그렇게(핵 포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위험을 없애는 협상이 아니라, 위험을 줄여야 하는 협상을 해야 한다며, △추가 핵실험 금지 △추가 대륙간 탄도미사일 실험 금지 △핵기술 이전이나 반출 등 3가지 의제를 놓고 대북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협상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며, 핵시설 폭격은 반대하지만 북한의 탄도미사일 대기권 재진입 기술 획득을 막기 위해 공해상에서의 북한 미사일 격추 등을 포함한 ‘플랜 비’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외에도 자신이 선호하는 대안들은 아니라는 전제를 달면서도, 협상 실패에 대비해 △대북 제재 강화 △한국과 일본에서 미사일 방어 전력 강화 △한국에 미군 핵무기 재배치 등을 포함한 주한 미군 전략 증강 등을 대비책으로 제시했다.
페리 전 장관은 빌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4년부터 1997년까지 국방장관으로 재직했고,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북핵·미사일 문제를 풀기 위한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된 뒤 남북한 방문 등을 통해 이듬해 10월 대북 포용을 기조로 한 초당적 ‘페리 보고서’를 제출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