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후보로 출마할 경우 신당 창당보다는 ‘제3당’에 입당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고 미국 외교전문지인 <포린 폴리시>가 2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또 이 매체는 파리 기후변화 협약을 반 총장의 거의 유일한 업적(레거시)으로 꼽았지만, 리더십이나 유엔 개혁 문제에 대해서는 혹평을 내놓았다.
반 총장은 지난 16일 이 매체의 유엔 전문기자인 콜럼 린치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뒤늦게 독자 신당을 창당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은 (당시) 새누리당이 붕괴하거나 ‘친박’과 ‘비박’으로 분당하기 직전인 한국 정당 상황을 린치 기자에게 설명한 뒤, (한국내에서) ‘제3당’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진행중에 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이를 두고 반 총장이 제3당을 가능성 있는 자신의 선거 플랫폼으로 제시한 것으로 풀이했다. 반 총장이 언급한 ‘제3당’이 지난 27일 분당을 공식화한 개혁보수신당(가칭)인지, ‘제3지대’ 전체를 가리킨 것인지는 명확하진 않다.
이 매체는 반 총장이 한국의 대통령이 되기를 열망하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라며, 반 총장이 “한국과 한국 정부는 미국 행정부 교체기에 매우, 매우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고 있다”며 대선 출마의 뜻을 시사했다고 밝혔다. 외교적으로 어려운 시기이니,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나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은 또 “(출마에) 점점 더 진지해지고 있다”며 “많은 사람이 내게 (출마를) 긍정적으로 검토해 나라를 위해 일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반 총장의 한 보좌관은 <포린 폴리시>를 통해 “반 총장의 대선 출마를 “1천% 확신한다”고 밝혔다. 반 총장은 부인해왔지만, 1년 이상 대선 출마를 위한 기초작업을 해왔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반 총장은 지난 20일 한국 특파원단과 유엔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 불살라서라도 노력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9일 서울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 귀국 후 정치행보와 관련해 주목을 받고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근조화환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반 총장의 리더십과 관련해, 이 매체는 반 총장이 유엔 수장으로서 위대한 평화중재자가 되기엔 카리스마와 지적 민첩성, 창의력 등의 자질이 부족했다는 비판가들의 말을 전했다. 반 총장은 중재 역할을 특별대사 형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했는데, 대표적으로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시리아와 케냐 문제 해결을 맡겼다. 유엔의 한 고위 참모는 이 매체에 “반 총장이 (이런 문제들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한 것은 다행이다. 반 총장은 재빠른 결단을 내리는 데 아주 약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 매체는 “반 총장 재직 기간에 대한 평가에서, 일부 전문가들은 시리아부터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평화의 문제들에서 반 총장은 대체로 명목상 수장이거나 기껏해야 응원꾼(치어리더)이었을 뿐이고, 종종 세계 열강들의 결정들을 지켜보는 구경꾼이었다”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지난 10년간 유엔은 강대국간 분열로 평화 노력이 좌절되고, 러시아와 서방간의 신 냉전 공포가 부활하는 등 더 악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내부 조직운영과 관련해서도 반 총장은 직원회의에서 일이 잘못되고 있거나 부하직원들한테 도전을 받으면 불같이 화를 내, 그의 측근들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기를 피했다고 전했다. 반 총장은 또 취임 초 관료적인 유엔 시스템의 개혁을 공언했지만 인사 시스템은 느리기 짝이 없었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유엔 평화유지군 병참 부대를 관장했던 앤서니 밴버리는 “새 직원 채용에 보통 213일이 걸린다”고 말했다. 또 내부 감시 프로그램의 고장으로 유엔 내부 부패를 뿌리뽑을 수 없었고, 유엔 평화유지군의 성적 비행들을 드러내지도,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지도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유엔 평화유지군이 아이티에 콜레라를 전염시켰는데도 반 총장이 이에 대한 책임 인정을 거부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이 매체는 지적했다.
이 매체는 반 총장의 업적으로는 “여러 국가들을 윽박질러 예정보다 일찍 파리 기후변화 협약을 비준하게 했던” 점을 꼽았다. 유럽외교협회(ECFR)의 유엔 전문가 리처드 고완은 반 총장이 “시(C)급 총장으로 치부될 뻔했으나 기후협정 덕분에 비(B)급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완은 “반 총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는지는 역사가들이 논쟁을 벌일 것이다. 반기문이 없었다면 협약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는 상당히 열심히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또 반 총장은 동성결혼을 한 유엔 직원들의 배우자들에게도 혜택을 준 첫 유엔 사무총장이라며, “반 총장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보수적 정부, 특히 아프리카 정부에 성적 지향성에 기초해 차별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