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미국 위스콘신주 웨스트 앨리스에서 열린 ’당선 감사 투어’에서 마이크 펜스(왼쪽) 부통령 당선자와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대통령 당선자가 무대에 올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웨스트 앨리스/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국무장관에 엑손모빌의 최고경영자 렉스 틸러슨(64)을 지명하면서, 차기 미국 행정부의 장관급 외교·안보라인이 완성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차별화, 친 러시아, 중상주의,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등이 트럼프 외교 정책의 주요 특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기조는 한반도 정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주도하는 주요 직책으로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 국방장관 등 ‘3인방’을 꼽을 수 있다.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전 국방정보국(DIA) 국장),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전 중부사령관) 등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3인방은 이른바 ‘ABO’(Anything But Obama·오바마 정책만 아니면 된다) 성향을 강하게 띄고 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대응을 외교정책 최우선 순위로 삼았던 오바마 행정부와는 달리, 이들 모두 중국에 대해선 무지하고 러시아와는 강한 경제적·인적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트럼프가 “기막히게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한 틸러슨 국무장관 지명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엑손모빌 최고경영자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사업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강경파로 소문난 플린도 지난해 러시아 정부가 후원하는 방송사 ‘러시아 투데이’ 주최 파티에서 푸틴 대통령과 가까이 앉아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트럼프가 주요 외교·안보 사령탑에 ‘친 러시아’ 인사들을 앉힌 것은, 그가 푸틴 대통령과 ‘브로맨스’(남성간 친근한 관계)로 불릴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지만, 러시아를 지렛대로 외교안보 현안을 풀려는 트럼프의 글로벌 전략과도 관련이 깊다. 트럼프는 지난해 8월 펴낸 자서전 <불구가 된 미국-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법>에서 시리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러시아 주도의 연합이 “푸틴 대통령을 유일하게 성공적인 세계적 지도자로 만들었다”고 극찬한 바 있다. 트럼프는 선거과정에서 시리아 문제와 이슬람국가(IS) 해결을 대외정책 첫번째 우선순위로 내걸었다. 러시아와의 적극적 협력을 통해 복잡한 중동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치적으로 내세우려 할 수 있다.
친러 흐름이 트럼프 대외정책 기조의 ‘원칙’으로 자리잡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중국에 대한 대응은 ‘변칙’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3인방들 가운데 중국과 교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없다. 이는 중국의 싼 공산품이 밀려오는 것에 대한 대중적 반감, 중국 부상에 대한 공포 등에 기반한 포퓰리즘과 경제적 성과주의로 대중국 정책을 끌어갈 것임을 시사한다. 안보적 이익보다는 경제적 실익에 대중 관계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하나의 중국’을 흔들 수도 있다고 주장한 것은 이런 ‘전술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북 정책은 당분간 차기 행정부 우선순위에서 꽤 밀릴 가능성이 높다. 일자리와 이민 등 국내문제가 더 시급하고, 대외 정책도 이슬람국가 및 중동 문제, 러시아와 중국 문제 이외에는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을 트럼프가 보여왔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대북 정책과 관련해 ‘중국 압박 및 활용론’을 강조해 온 것은, 빌 클린턴 행정부 이후의 현상유지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북핵 문제가 불거질 경우, 트럼프는 ‘중간 해법’을 선택하기보단 극적 대화와 군사적 수단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그가 유세 기간에 했던 말처럼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를 할” 수도 있고,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 대화를 선택하면 러시아 인맥을 창구로 대북 정책의 돌파구를 열 수 있고, 군사적 방법을 선택하면 한국과의 조율없이 일방적으로 강행할 여지가 있다. 포퓰리즘적인 트럼프의 성향에 비춰 볼 때, 의회를 비롯한 여론이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참모들의 의견도 중요한 정책 결정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미친 개’로 불리는 매티스 국방장관 내정자는 원칙주의자이긴 하지만 군사적 수단 대신 외교적 해법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틸러슨도 협상을 통한 ‘해결사’로 불린다. 하지만 플린은 초강경파이자 이념주의자다.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 정책 성격이 달라진다. 트럼프가 가장 신뢰하는 ‘막후 참모’인 사위 제러드 쿠슈너의 조언이 실제로는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한-미 동맹과 관련해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큰 폭 인상 요구는 거의 기정사실로 워싱턴 외교가에선 받아들이고 있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주한미군 감축 등과 같은 ‘깜짝 놀랄’ 발언 등을 던져 한국 정부를 흔들 수도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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