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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풍운아 카스트로의 삶…영웅인가, 압제자인가

등록 2016-11-27 17:53수정 2016-11-27 23:08

혁명 게릴라 조직때 체 게바라와 인연
미 CIA 638번 암살 시도에도 살아남아

법정 진술 “역사가 날 무죄로 하리라”
일당독재…효율적 개혁, 시민권 억압
“고귀하고 이타적 나라의 풍요” 미완성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26일(현지시각) 카스트로가 법학을 공부했던 아바나 대학에서 학생들이 카스트로 사진 앞에 꽃다발을 놓고 추모의 촛불을 밝히고 있다. 아바나/AP 연합뉴스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26일(현지시각) 카스트로가 법학을 공부했던 아바나 대학에서 학생들이 카스트로 사진 앞에 꽃다발을 놓고 추모의 촛불을 밝히고 있다. 아바나/AP 연합뉴스
25일 밤 90살로 타계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26일 그를 “사회정의의 챔피언이자,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인물”이라고 애도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트위터에 그를 “무자비한 독재자”라고 지칭했다. 어느 쪽이든 피델 카스트로가 미-소 양 진영이 대립한 냉전 시기뿐 아니라 1990년대 이후 탈냉전 시대에도 미국의 턱밑에서 ‘붉은 깃발’을 놓지 않고 저항한, 한 시대를 풍미한 거물급 지도자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지난 4월 피델은 쿠바 공산당 제7차 전당대회 폐회식에서 한 사실상의 고별 연설에서도 “쿠바 공산주의 사상은 인간이 열성과 품위를 가지고 일하면 인간에게 필요한 물질적, 문화적 재화를 생산할 수 있다는 증거로 남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26일(현지시각) 수도 아바나에서 시민들이 카스트로의 사진과 꽃다발을 거리에 내놓고 추모하고 있다. 아바나/AP 연합뉴스
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26일(현지시각) 수도 아바나에서 시민들이 카스트로의 사진과 꽃다발을 거리에 내놓고 추모하고 있다. 아바나/AP 연합뉴스
피델 카스트로는 1926년 스페인 출신 이주민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바나 대학교 재학 시절, 남미를 휩쓸던 사회주의 민족해방 혁명에 눈뜨면서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1948년 부유한 정치가의 딸과 결혼하면서 지배계급의 엘리트 집단에 합류할 것을 권유받았지만, 그의 관심은 마르크시즘으로 기울었다. 카스트로는 변호사로 활동하던 1953년 풀헨시오 바티스타 친미 독재정권을 타도하려고 몽카다 병영을 습격했다가 실패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때 부인과 이혼하면서 지배계급에 편입할 수 있는 기회와도 완전히 결별했다.

당시 그가 재판정 최후진술에서 남긴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는 명언은 지금까지도 널리 회자된다. 그는 이 변론에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로마 공화정뿐 아니라 고대 중국의 역사까지 거론하며 폭압에 대한 ‘민중혁명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중세 유럽의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르틴 루터 같은 신학자들, 존 로크와 장 자크 루소 등 근대 사회계약론자들의 학설, 나아가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과 미국 독립선언의 정신까지 설명하며 뒷받침했다.

1955년 특사로 석방된 그는 바티스타 정권의 탄압을 피해 멕시코로 건너가 쿠바 혁명을 수행할 게릴라 조직을 건설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 체 게바라를 만난 것도 이때였다. 1959년 1월, 피델이 이끄는 혁명군은 아바나에 입성해, 부패하고 쇠락한 독재 정권을 무너뜨렸다. 혁명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대부분 미국인 소유였던 설탕과 석유 회사들과 대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해 국유화한 것이었다. 미국과 서방은 격노했고, 쿠바의 기득권 부유층은 깊은 원한을 새겼다.

피델 카스트로가 지난 2013년 4월11일 수도 아바나의 한 학교 개교식 참석 당시 모습. 아바나/신화 연합뉴스
피델 카스트로가 지난 2013년 4월11일 수도 아바나의 한 학교 개교식 참석 당시 모습. 아바나/신화 연합뉴스
쿠바 혁명 직후부터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무려 638차례나 폭발물 시가, 독극물 우유, 옛 애인, 폭탄 조개, 고압 전기 등 온갖 기발한 수단을 동원해 카스트로를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카스트로는 “올림픽 경기 종목에 ‘암살 모면하기’가 있다면 내가 금메달일 것”이란 농담을 한 적도 있다.

피델은 ‘혁명의 완수’를 위해 공산당 일당 독재를 고집했다. 이는 농지개혁, 선진적인 보건의료 체계와 전면 무상교육 등 기본적 사회복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효율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폭압과 사회적 다양성 마비 등 민주주의에는 치명적인 결함을 낳았다. 집회와 표현의 자유 등 근대적 시민권은 제약됐고, 엄격한 정보 통제도 뒤따랐다.

철저한 반미주의자이자 공산주의 혁명가였던 그도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를 이기지는 못했다. 1990년대 들어 형제국이었던 옛소련을 포함한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2006년에는 장 출혈로 수술을 받는 등 급속히 건강이 악화하면서 2008년 동생 라울에게 최고 지도자 자리를 물려줬다. 그는 지난해 미국과 쿠바가 반세기에 걸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한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수도 아바나에서 혁명 동지이자 동생인 라울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는 것까지 봤다.

쿠바 혁명 직후, 체 게바라(왼쪽)와 피델 카스트로(오른쪽)
쿠바 혁명 직후, 체 게바라(왼쪽)와 피델 카스트로(오른쪽)
쿠바 혁명 이후, 한 리셉션장에서 피델 카스트로(왼쪽)와 체 게바라(가운데)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바나/AP 연합뉴스
쿠바 혁명 이후, 한 리셉션장에서 피델 카스트로(왼쪽)와 체 게바라(가운데)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아바나/AP 연합뉴스
피델은 양국 정상회담 직후에도 “제국이 우리에게 주는 어떤 선물도 필요 없다”며 여전히 미국에 대한 깊은 반감과 불신을 표출했다. 그는 당시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에 쓴 글에서 “오바마가 달콤한 말로 연설했지만, 이 고귀하고 이타적인 나라의 사람들이 교육, 과학, 문화의 발전을 통해 이룩한 영광, 권리, 정신적 풍요를 포기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강조했다. 피델이 염원했던 “고귀하고 이타적인 나라의 풍요로움”은 이제 후대들의 몫으로 남겨진 채, 도널드 트럼프(미국의 차기 대통령 당선자) 시대의 미국과 세계에서 또다른 시험대에 올랐다. 그리고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 혁명의 동지이자, 친구인 체 게바라(1928~1967)의 곁으로 49년 만에 돌아간다.

쿠바 정부는 26일 앞으로 9일간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나흘간의 공식 장례일정을 28일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카스트로의 주검은 그의 유언에 따라 화장된 뒤, 다음달 4일에는 그가 습격에 실패한 몽카다 병영이 있던 곳이자 혁명 승리를 선언했던 쿠바 제2의 도시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영면에 들 예정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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