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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간 기증’이 맺어준 사랑의 결실

등록 2016-10-27 14:47수정 2016-10-27 15:08

미 남성, 우연히 딱한 사연 듣고 장기기증 결심
환자는 ‘2개월 시한부 삶’ 진단 받은 20대 여성
이식 대기환자 12만명인데 나타난 ‘생명의 은인’
수술 앞두고 만남 늘면서 사랑 싹트고 결혼까지
간 이식수술로 새 삶을 얻은 헤더 크루거(왼쪽)와 그에게 간을 기증한 크리스토퍼 뎀프시가 지난 15일 결혼식에서 활짝 웃고 있다. 크리스토퍼 뎀프시 페이스북 계정 갈무리
간 이식수술로 새 삶을 얻은 헤더 크루거(왼쪽)와 그에게 간을 기증한 크리스토퍼 뎀프시가 지난 15일 결혼식에서 활짝 웃고 있다. 크리스토퍼 뎀프시 페이스북 계정 갈무리
남성은 간을 내주었고, 여성은 사랑으로 화답했다. 간 질환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던 여성과 이 환자에게 자신의 간을 떼어준 남성이 한 쌍의 아름다운 커플로 태어났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인근의 소도시인 프랑크포트의 공무원인 크리스토퍼 뎀프시(38)가 생면부지의 간 질환 환자인 헤더 크루거(27)에게 자신의 간을 반쪽이나 기증했고, 그 덕분에 새 삶을 찾은 크루거와 백년가약을 맺었다고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이 26일 보도했다. 둘은 지난 15일 친지와 벗, 병원 의료진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가슴 따뜻한 ‘러브 스토리’는 지난해 1월 뎀프시가 직장 휴게실에서 직장 동료가 크루거의 가족들과 대화하는 것을 들으면서 시작됐다. 그 직장 동료는 크루거의 사촌이었다. 당시 크루거는 심각한 간 질환을 4가지나 앓고 있었다. 크루거는 간 이식 수술을 받지 못할 경우 2개월 이상 생존 가능성이 50%도 안 된다는 진단을 받은 참이었다.

크루거와 가족은 절박한 심정으로 간 기증자를 물색했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이미 앞서 간 기증을 기다리는 환자가 미국 전역에 11만9000명이나 대기 중이었던데다, 설령 간 기증자를 찾는다 해도 혈액형과 면역반응 통과 등 간 이식에 적합할 확률은 극히 낮기 탡문이다.

뎀프시가 우연히 직장 휴게실에 들어온 것은 하늘이 맺어줄 축복의 예고편이었다. 뎀프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돌이켰다.

“동료에게 간 이식이 필요한 사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나도 내 자신이나 가족이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게 될 거야.”

뎀프시는 동료의 사촌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장기 기증을 결심했다. 간 조직검사 결과는 놀라웠다. 자신의 간이 크루거와 잘 맞았던 것이다. 지난해 2월초, 뎀프시는 한번도 만나 본 적이 없는 크루거에게 전화를 걸어 간 기증 의사를 밝혔다. 그 며칠 뒤, 둘은 처음으로 만나 점심을 먹었다. 뒷날 크루거는 뎀프시의 전화를 받고 자신과 어머니가 기쁨에 넘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털어놨다.

간 기증자 크리스토퍼 뎀프시(왼쪽)와 그 덕분에 새 생명을 얻은 헤더 크루거가 지난해 3월 이식수술을 마친 뒤 병원 회복실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뎀프시 페이스북 계정 갈무리
간 기증자 크리스토퍼 뎀프시(왼쪽)와 그 덕분에 새 생명을 얻은 헤더 크루거가 지난해 3월 이식수술을 마친 뒤 병원 회복실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뎀프시 페이스북 계정 갈무리
간 이식 수술 날짜가 다가올수록 둘의 만남은 잦아졌다. 뎀프시의 동호모임인 모터사이클 클럽은 이들의 수술 비용을 마련하려 기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 뎀프시는 “우린 기부금을 줄 사람들을 찾아 함께 다녔다. 그때 나는 그녀가 정말 멋진 여성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가 알고 싶은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한달여 뒤인 3월16일 일리노이주립대 병원에서 수술 날짜가 잡혔을 때 둘은 이미 연인이 돼있었다. 그러나 공식적인 커밍 아웃은 수술 뒤로 미뤘다. 뎀프시는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확신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상당히 긴장해 있었습니다. 뭔가 잘못될 가능성은 늘 있으니까요. 하지만 내 결정을 재고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그로부터 8개월 뒤, 시카고 시내에 말이 끄는 멋진 마차 한 대가 나타났다. 뎀프시가 크루거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한 것이다. 간을 나눠가진 둘은 1년 뒤인 최근 마침내 결혼식을 올렸다. 뎀프시는 “내가 간 기증을 결심했을 때만 해도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리라곤 100만년에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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