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오전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제67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마치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제에디터석 선임기자 Egil@hani.co.kr 1980년 4월20일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정부는 쿠바를 떠나고 싶은 사람은 떠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아바나 근처의 항구 마리엘을 개방했다. 그해 10월까지 약 12만5천명의 쿠바인들이 조각배 등을 타고 미국 플로리다 해변에 밀려들었다. 미국 사회는 경악하고 황당해했다. 미국은 카스트로 정권 체제를 교란하려고 쿠바인들의 체제 이탈을 부추기다가 되치기를 당했다. 카스트로 정권은 교도소 수감 범죄자, 정신질환자도 그 대열에 합류시켰다. 쿠바 사회에 부담이 되는 인력도 청소했다. 12만5천명 중 6만여명이 마이애미에 정착한 탓에, 마이애미 노동시장은 단기간에 미숙련 노동력이 7%나 증가했다. 이들은 출발지인 마리엘의 이름을 따서 마리엘리토스라고 불렸다. 올리버 스톤의 각본에 알 파치노가 주연한 영화 <스카페이스>(1983년)는 마리엘리토스 출신의 갱 영화로, 이들과 미국 사회의 불화를 그렸다. 실제로 ‘마리엘리토스’라는 쿠바 갱단이 조직되어, 그 후 미국 사회범죄의 핵심인 마약 밀매의 중추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일 국군의 날 연설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탈북 재촉은 계속된다. 13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해외자문위 회의에서는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자신의 꿈을 자유롭게 실현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모든 길을 열어놓고 맞이할 것”이라고 더 강도 높게 탈북을 촉구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5년 8월 현재 우리 사회 내의 탈북 주민은 2만9688명이다. 이 3만명을 놓고도 우리 사회는 지금 삐걱대고 있다. 탈북 주민 2명 중 1명만 일하며, 4명 중 1명은 생계지원을 받는다. 탈북자 정착금도 지난해에 약 397억원의 예산을 편성했지만 실제 집행은 약 587억원에 달해 190억원 정도의 정착금이 부족했다. 어버이연합의 관제시위에 동원된 사태에서 보듯 탈북 주민은 3등 시민이자, 한국 사회에서 없던 ‘마이너리티’(소수집단)가 됐다. 탈북 주민에 대한 지원제도를 놓고 역차별이라며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강경한 반공주의자들이다. 우리 사회는 박 대통령이 말한 대로 탈북 주민들이 대거 밀려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탈북 주민 규모가 10만~15만명 정도라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우리 사회는 소수집단 수용 문화가 아직 없다. 만일 북한이 쿠바처럼 발상의 전환이라도 한다면? 자기 사회에 부담되는 인력을 솎아내서 마리엘리토스 사태처럼 한국으로 방류할 가능성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나? 휴전선을 남쪽으로만 개방하거나, 마리엘리토스 사태처럼 배에 태워 보낼 수도 있다. 베트남 전쟁 뒤 남중국해를 떠돌던 베트남 보트피플 사태가 동해와 서해에서 벌어질 거다. 탈북 권유는 북한 체제 교란이 아니라 남한 체제 교란으로 바뀔 수 있다. 마리엘리토스는 이민과 난민의 효과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대규모 난민 유입이 마이애미 등의 노동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거다. 데이비드 카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1990년 ‘마이애미 노동시장에 대한 마리엘 긴급 해상수송의 영향’이라는 기념비적 연구를 했다. 마리엘리토스라는 이민 노동력이 들어오자 자본은 이들의 이점인 상대적 저임금을 활용하는 새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이렇게 커진 경제는 결국 추가 노동력을 필요로 해 임금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결론냈다. 이른바 ‘자본 재조정’ 효과다. 다만 전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미국처럼 시장이 크고 소수집단을 수용하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미국 같은 큰 나라도 12만5천명을 수용하는 데 큰 홍역을 치렀다. 만약 대규모 탈북 주민 사태가 생겨 한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이들을 포용할 사회문화적 제도와 분위기에다가 고통스런 긴 시간이 필수불가결하다. 엄청난 모험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역량을 그런 데 투여할 수 있을까? 미국 정부는 결국 쿠바 정부에 백기를 들고는 마리엘리토스 사태를 6개월 만에 종료시켰다. 그 후 미국은 배를 타고 쿠바를 이탈해 자국 연안에 오려는 사람들을 해상에서 밀어내기에 급급했다. 사람을 가지고 장난쳐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를 찾아오는 탈북자들이나 따뜻하게 맞이하고 도와주자. 지금도 중국 대륙을 떠도는 탈북자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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