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용 국가안보실 1차장 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 <한겨레> 자료 사진
미국과 중국 간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 협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조태용 국가안보실 1차장 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이 지난 4일(현지시각)부터 7일까지 미국을 전격적으로 비공개 방문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과의 마찰을 무릅쓴 고강도 대북제재와 중국과의 적절한 타협을 통한 저강도 대북 압박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는 가운데, 조태용 차장이 미 행정부에 강경한 대북 정책을 주문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6일 정례브리핑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의 조태용 국가안보실 1차장을 만났다”며 “최근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과 한-미간 긴밀한 조율의 중요성 등을 포함해 지역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조 차장은 이날 한국으로 출발하기 직전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를 포함해 대북 압박을 해야겠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조 차장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수위가 ‘중국의 비협조’로 한·미의 기대치보다 낮을 경우, 양국이 취할 독자제재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복수의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조 차장의 방미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한 지 한달이 다 됐지만, 미-중 간 안보리 협의가 진척이 없는 상황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미 정부는 지난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270호의 루프홀(구멍)로 지적되는 북한의 석탄 수출을 민생 예외조항에서 없애거나 축소하려 하고 있지만, 중국은 자국 기업에도 피해를 미칠 수 있다며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미-중 협의가 난항을 겪으면서 미국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미 외교안보 전문매체인 <포린 폴리시>는 6일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경제를 심각하게 손상시킨 것과 같은 강력한 대북 제재 방아쇠를 당길 것인지를 놓고 격론을 벌이고 있다”며 “(이행되면) 대북 제재는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들을 겨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2월 미 의회를 통과한 대북제재법은 중국 기업까지 옥죌 수 있는 강력한 대북 제재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이행 여부는 행정부에 위임하고 있다.
‘중국과의 마찰 불사론자’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상황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정보 판단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또,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퇴임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조처를 실행해 주면 차기 대통령이 미-중 갈등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그러나 백악관 당국자들을 중심으로 한 신중론자들은 강력한 대북 제재 실행이 (북한이 아닌) 중국은행 및 기업들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심각한 갈등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또 외부와의 연결고리가 거의 없는 북한에게는 이란식 제재가 실효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미 행정부 안에서 강온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조 차장의 방미는 미국 내 정책결정 흐름이 강경한 쪽으로 흐르는 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탈북 권유’를 하는 등 붕괴론에 가까운 발언을 한 바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