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밤(현지시각) 콜롬비아 정부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의 평화협정 찬반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진 시민들이 투표 ‘부결’ 결과에 환호하고 있다. 보고타/AFP 연합뉴스
반세기에 걸친 내전을 끝낼 것으로 기대됐던 콜롬비아 평화협정이 예상치 못한 대형 암초에 부딪쳤다.
콜롬비아 정부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지난 8월 합의한 평화협정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가 2일 ‘찬성 49.78% 대 반대 50.21%’라는 박빙의 차이로 부결됐다고 <에이피>(AP) 등 외신들이 콜롬비아 선거관리위원회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투표율은 37%로 매우 낮았고, 불과 0.4%포인트 차이로 부결된 것이다.
이번 투표 결과는 대다수가 예상치 못해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투표 직전 여론조사에서도 ‘찬성’이 응답자의 3분의 2 정도로 나오면서, 평화협정안은 무난히 국민투표를 통과할 것이란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뜻밖의 국민투표 부결에 따라, 콜롬비아 정부와 무장혁명군이 3년9개월간의 끈질긴 협상 끝에 8월 말 쿠바 아바나에서 극적으로 합의한 평화협정도 무력화할 위기에 놓였다.
콜롬비아에서는 1964년 좌파 세력과 농민, 원주민 등이 무장혁명군을 꾸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게릴라 투쟁을 시작했다. 정부군과 우익 민병대 등이 무력 진압에 나서면서 유혈 충돌이 이어져, 지금까지 약 26만명이 숨지고 4만5000명이 실종됐으며, 680여만명의 이재민이 생긴 것으로 추산된다. 정치 불안과 피폐한 경제에 시달린 대다수 국민들은 내전 종식을 희망했는데, 국민투표 결과는 엉뚱하게 나온 것이다.
2일 콜롬비아 정부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의 평화협정 찬반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진 여성 유권자들이 투표 ‘부결’ 결과를 보여주는 대형 거리 전광판을 보며 실망과 슬픔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보고타/AP 연합뉴스
국민투표 부결 직후, 정부와 반군은 즉각 “휴전 합의는 유효하며 콜롬비아 안정에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평화의 불씨를 되살릴 방안을 찾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때문에 투표 결과가 양쪽의 충돌이나 분쟁 재개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아 보인다.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고 임기 마지막 날(2018년 8월)까지 평화를 모색하겠다.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나라를 물려주는 길”이라고 말했다. 산토스는 ‘반대’ 표를 던진 그룹들과 3일 만나 향후 해결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평화협상 대표단을 콜롬비아무장혁명군 지도부가 머물고 있는 쿠바로 다시 급파했다. 무장혁명군 지도자인 로드리고 론도뇨도 “우리는 미래를 건설하는 무기로 총기가 아닌 말(대화)을 사용한다”며 “평화가 곧 승리다”라고 말했다.
이번 국민투표 부결에는 “반군 책임자들에 대한 지나친 관용은 거부한다”는 정서가 큰 몫을 차지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1년 할머니를 반군에 잃었다는 보고타 시민 모니카 곤잘레스는 2일 <에이피> 통신에 “평화협정이 반군들에게 너무 부드럽다”며 “(그들에게) 새 기회를 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불처벌은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찬성’ 캠페인을 벌였던 아드리아나 리베라는 “콜롬비아가 내전 내내 겪었던 전쟁의 잔혹함, 죽음과 부상과 고통을 잊어버린 것 같다”며 눈물을 내비쳤다.
평화협정은 반군 중 학살·성폭행 등 중범죄자들을 제외한 단순 가담자들에게는 감형과 사회봉사 등 폭넓은 사면과 사회복귀를 허용하고 있다. 나아가 반군 출신들에게도 2018년 대선과 총선 참정권이 부여되며, 2026년까지 의회에 선거와 무관하게 10석을 보장받는다.
남미 위성방송 <텔레수르>는 2일 “콜롬비아 지배계층 다수가 내전의 정치적 해결에 관심이 없었던데다 급격한 사회변동을 원치 않았다”는 분석을 내놨다. 내전 덕분에 반대세력의 정치·사회적 저항을 피하고 기존 권력구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 투표성향 분석을 보면, 무장 분쟁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기득권 세력 쪽에서 ‘반대’ 캠페인을 주도한 반면, 낙후 지역 빈곤층과 아프리카계 주민, 원주민 유권자들은 ‘찬성론’이 압도적이었다. 투표 당일에 태풍 등 기상악화도 찬성 성향이 높은 지역의 투표율을 떨어뜨렸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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