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워싱턴까지 65일, 3400마일(약 5472km)을 자전거로 달렸다. 7월의 찌는 무더위 속에 미국 남부 사막을 건너고, 8월 말 폭우 속에 중부와 동부를 가로막은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미국인들에게 알리겠다며 한국에서 온 3명의 대학생들은 빗길에 미끄러지고, 탈수 현상이 일어나고, 무릎에 통증이 와도 페달을 밟았다.
얼굴도 모르던 김한결(24·경희대 체육학과), 김현구(24·한성대 정보통신공학과), 김태우(23·경희대 체육학과)씨 등 3명은 ‘3A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3A’란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고(Admit), 이에 대해 사죄하며(Apologize), 아울러 피해를 입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혼과 마음을 안고 동행하겠다는(Accompany)는 뜻을 담아 지난해 처음으로 시작된 대학생들의 ‘자전거 미국 횡단’ 프로젝트였다. 3명의 대학생들은 지난해 1기 대학생들의 ‘면접’을 거쳐 선발됐다.
의욕 하나만으로 시작한 대장정이었다. 현구씨를 제외하곤 자전거를 제대로 타 본 경험도 없었다. 지난해보다 관심이 늘었지만 후원도 부족했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 이들이 손에 쥔 돈은 소속 대학들에서 마련해 준 돈을 포함해 500여만원이 전부였다. 비행기표도 각자 개인 돈으로 끊었다. 일본 시장을 의식한 자전거 회사들이 후원을 꺼리기도 했다. 다행히 로스앤젤레스, 댈러스, 시카고 등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미국 대도시에서 이들의 뜻에 동참해 정성을 보탰다.
22일(현지시각) 버지니아에 도착해 23일 페어팩스 카운티 청사에 설치된 위안부 평화나비 기념비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이들에게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물었다. 한결씨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한국에서 알바를 하거나 영어공부 등 이른바 ‘스펙쌓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마음에 끌리는 것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결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와 함께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뒤 매달 천원씩 후원을 해오던 터였다.
현구씨는 군에서 제대를 한 뒤 자전거에 취미를 붙였다. 자전거와 친숙해질 무렵, 목표를 갖고 자전거를 타고 싶었다. 그는 1기 ‘3A 프로젝트’ 활동들을 접하고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위안부 관련 책도 읽고 기사도 찾아봤다. 그는 이번 행사 준비를 위해 올해 아예 휴학을 했다. 그는 “기왕 할 바엔 제대로 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태우씨는 평소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한-일 정부간 12·28 위안부 합의를 보고, 피해자 할머니의 의견이 배제된 한-일 정부간 합의가 과연 국제법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고 말한다.
미국 지리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출발한 여정은 숱한 복병을 만났다. 8월11일 시카고를 출발해 22일 워싱턴에 도착한 12일간의 일정은 유난히 이들에게 버거운 구간이었다. 워싱턴에서 행사에 참석하는 일정을 위해 하루도 못쉬고 강행군을 했다. 게다가 6일 연속 비를 맞았다. 빗줄기가 강할 때는 시야가 10m 앞도 안보였다. 앞이 안보이는 것도 걱정이지만, 뒤의 차량이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할까 더 걱정됐다.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타박상을 입기도 했고 브레이크가 고장나 식은 땀을 흘리며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수없이 반복되는 애팔래치아 산맥은 끝을 보여주지 않았다. ‘막내’ 태우씨는 무릎이 찌릇찌릇해지는 증상까지 찾아왔다.
대장정 초기였던 6월말~7월초까지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의 사막 구간도 열흘 넘게 이들을 괴롭혔다. 46도가 넘는 날씨,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 속에서 탈수 증상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어김없이 최소한 60~70마일은 가야 숙소가 나타나기 때문에 페달을 밟아야했다. 자전거 살이 부러지거나 펑크가 나는 것은 다반사였다.
하루 5~6시간, 휴식과 식사를 합치면 8시간 정도를 거리에서 지냈다. 식사는 돈을 아끼기 위해 ‘서브웨이’나 ‘버거킹’ 같은 ‘패스트 푸드‘점에서 때웠다. 그나마 시골을 지날 때 이런 패스트푸드도 없으면 ‘에너지바’로 끼니를 해결했다고 한다. 한결씨는 “몸무게가 8kg이나 빠졌다”고 말했다. 숙소는 자전거 여행객들에게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웜샤워’를 주로 이용했다.
이들은 자전거를 타면서 만난 미국인들 중에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만난 2002년 미국 핸들 사이클 챔피언 미첼 본드가 가장 기억이 남는다고 했다. 이들의 얘기를 들은 본드는 자신이 딴 메달의 리본을 푼 뒤 삼등분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공감의 표시였다. <에이비시>(ABC) 방송과 <폭스 뉴스> 등을 비롯해 작은 지방 언론사들까지 합치면 10여개의 미국 언론에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2·28 합의에 대해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합의이므로 무효라고 생각한다”며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과가 이뤄질 때까지 이 프로젝트를 계속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들은 오는 28일 워싱턴을 출발해 9월2일 뉴욕에 도착한 뒤 9월7일 뉴욕 일본 총영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하는 것으로 84일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워싱턴/ 글 사진 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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