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자리한 플로리다 국제 대학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오른쪽)와 팀 케인 부통령 후보가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마이애미/EPA 연합뉴스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버지니아 주의 팀 케인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고, 23일(현지시각) 첫 공동유세에 나섰다. 케인 의원이 클린턴과 공동 유세를 한 적은 있지만, 부통령 후보로 대중 앞에 선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케인은 이날 오후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플로리다 국제대학에서 열린 유세에 나와 클린턴의 소개를 받고 등장해 첫 인사를 “비엔베니도스 아 토도스”(“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는 스페인어로 시작했다. 젊은 시절 온두라스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갈고닦은 스페인어를 구사해, 히스패닉계 유권자에 다가가는 전략인 셈이다. 플로리다 국제대학은 절반 이상의 학생이 히스패닉계로 구성돼 있다.
케인은 여러차례 스페인어를 구사하면서, 온두라스에서의 선교활동,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시장 및 주지사를 거쳐 상원의원에 이른 삶의 경험을 전하며 “앞으로도 옳은 일을 위해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케인은 힐러리를 부각시키며 이와 대비해 트럼프를 공격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쓰레기같은 말을 하는 대통령을 원하냐, 가교역할을 하는 대통령을 원하느냐. 트럼프는 장애인이나 멕시칸-아메리칸이나 히스패틱에 쓰레기 같은 말을 한다”며 “트럼프에게는 (아메리카 우선이 아니라) ‘내가 우선’”이라고 날을 세웠다. 또한 그는 “힐러리 전 장관은 ‘당신은 고용됐어요’라고 말할 대통령이지만, 트럼프는 ‘당신은 해고야’라고 말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클린턴은 케인을 소개하면서 “평생 사회정의에 힘써왔다”고 소개한 뒤 “(공화당 정·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나 마이크 펜스와는 비교도 안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클린턴은 특히 케인을 신앙이 두터운 사람이며, 기꺼이 초당적으로 일할 수 있고, 진보적 대의를 위해 일해왔다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 두 가족(클린턴과 케인)에게 신앙이란 단지 일요일날 교회에서나 얘기하는 것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모든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라는 부름”이라고 말했다. 클린턴은 “케인이 선거에서 한반도 낙선한 적이 없다”며 그의 ‘승리 신화’를 은근히 강조하는 모습도 보였다.
케인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계 부모를 둔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기 전 전 온두라스에서 선교활동을 해 스페인어에 능통하다. 어디에서도 주지사나 상원의원이라는 직함을 내세우지 않으며, 연설문을 따로 준비하지 않는 편안한 연설로 유명하다. 그는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당시에도 인상적인 연설을 남겼다.
클린턴이 케인을 런닝메이트로 선정한 것은, 표의 확장성보다는 안정성 및 민주당 주류에 대한 호응 등 민주 당 내부 역학을 일차적으로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지지층을 흡수할 수 있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나, 최대 규모의 소수인종이 된 라틴계를 끌어모을 수 있는 훌리안 카스트로 장관, 흑인인 코리 부커 의원보다는 특정 계층의 유권자를 겨냥할 수 있는 경력상의 장점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케인은 민주당 주류 쪽에서 엘리코 코스를 착실하게 밟아왔다. 1998년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시장을 시작으로 버지니아 부지사와 주지사,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게다가 그는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의 런닝메이트로도 거론될만큼, 영향력은 있지만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던 뻔한 후보이다. 행정 및 정치 경력은 풍부하지만 감동은 없는 ‘밋밋한’ 후보인 셈이다.
그는 낙태권리나 총기규제를 옹호하는 등 일부 쟁점에 대해선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지만, 월가 규제 등에 대해선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 때문에 그의 정치적 성향을 ‘중도적’으로 분류하는 사람이 많다. 월가규제를 요구하는 샌더스 지치층이나 젊은층의 표심을 끌어오기엔 한계가 뚜렷한 것이다.
그는 미네소타에서 태어났고, 경합주(스윙스테이트)인 버니지아에서 정치 경력을 쌓아왔다. 하지만 이런 경력이 크게 표의 확장성에 도움이 안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통령의 득표 기여는 이른바 ‘홈 스테이트’에 국한되는 경향이 커지고 있고 다른 주의 득표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버지니아 거주 공화당원들은 대체로 트럼프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정치공학’적으로만 보면, 클린턴에 이미 상당히 유리한 주에서 런닝메이트를 선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부통령 후보가 다른 주의 득표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결국 향후 본선은 존재감과 영향력이 미미한, 트럼프의 런닝 메이트 마이크 펜스나 클린턴의 런닝메이트 케인의 힘을 얻기보다는 결국 대선 주자간 대결로 흐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클린턴 캠프 진영은 이미 승리를 확신하며 평범한 런닝메이트 선택을 했다고 하지만, ‘클린턴-케인 짝’은 변화를 거부하는 ‘기성 정치권’이라는 트럼프의 공격에 먹잇감을 던져준 꼴이 될 수도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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