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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공화당은 트럼프에게 ‘접수’됐나, ‘납치’됐나?

등록 2016-07-22 20:49수정 2016-07-22 20:57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

어느 정치 행사보다도 주목을 끌면서 21일 끝난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의 핵심은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당을 완전히 접수해 장악했느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렇지 않다. 당의 파열만 확인했다.

당의 기성 주류들이 그를 추인하지 않았다. 부자가 대통령을 지낸 조지 부시 일가는 전당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은 심지어 이 기간 중 “솔직히 내가 공화당의 마지막 대통령으로 남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밋 롬니, 존 매케인 전 대통령 후보도 불참했다. 전직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들이 건강 문제가 아닌데도 전당대회에 일제히 불참한 것은 미국 주요 정당 역사상 처음이다.

21일(현지시각)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후보 수락 연설을 마치자 형형색색의 풍선들이 대회장 천장에서 쏟아져 내려오고 있다. AP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각)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후보 수락 연설을 마치자 형형색색의 풍선들이 대회장 천장에서 쏟아져 내려오고 있다. AP 연합뉴스
트럼프와 끝까지 후보 경선을 벌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전당대회 연설에서 “양심에 따라 투표하라”고 말해, 대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연설 사본을 미리 배포했다. 이런 말을 할 것이 예상된 그를 단상에 올린 것은 그의 대회 불참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당의 공식적 최고위 인사들로서 대회에 참석해 연설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트럼프를 ‘개인적으로 지지(support)’했지, 당의 후보로서 ‘공식적으로 보증(endorse)’한 것은 아니었다. 이는 자신들이 공화당의 고위 당직자로서 그를 반대할 수 없으니 마지못해 지지한다는 것이지, 자신을 걸고서 그를 당의 후보로 보증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정책과 노선을 둘러싼 불협화음과 갈등도 확인됐다. 트럼프는 전당대회 도중 <뉴욕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인 발트 3국을 공격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 나라가 미국에 대한 의무를 다했는지를 검토한 뒤에 방어에 나설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전당대회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당 중진의원들이 경악했다.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토는 세계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군사동맹이다. 회원국 중 어떤 나라가 공격받는다면, 우리가 그들을 방어하기 위해 거기 가야 한다고 우리의 나토 동맹국들에 재확인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후보 경선 과정에서 줄곧 자유무역협정 반대, 해외 군사개입 반대 등 공화당의 기존 노선과 반대되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채택된 당 정강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반영되지 않았고, 미국제일주의, 종교교육 강화, 감세 등만 강조됐다. 공화당의 기존 노선 중 사회적 의제들만 더욱 강경보수화됐다. 이는 트럼프가 티파티 등 당의 풀뿌리 강경보수들을 포섭하고 당의 기성 주류들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평가됐다. 정강은 자유무역을 옹호한다고 사실상 명시했다. 그런데 그가 후보 수락 연설에서 자유무역협정 반대 등을 강력히 표명하며, 나토 방위의무 방기 등을 내세워 당의 기성 주류들의 뒤통수를 다시 때린 것이다.

전당대회를 통해 공화당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백인 중하류층, 티파티 등 강경보수 세력, 최상류층의 이익에 기반한 기성 주류들로 삼분되는 양상이다. 이번 전당대회로 공화당은 물론 대선까지는 트럼프의 주도로 운영되겠지만, 당의 기성 주류들이 그를 도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공화당의 기성 주류들은 트럼프의 낙선을 속으로 바라고, 때론 이를 공공연히 드러낼 것이다.

공화당의 최대 큰손이자 미국 보수세력의 최대 후원자인 찰스 코크가 22일치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개탄하는 글을 이례적으로 기고한 것도 공화당과 보수세력 큰손들의 입장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공화당을 ‘하이재킹’(납치)했을 뿐이다. 접수해 장악한 것이 아니다. 트럼프는 21일 후보 수락 연설에서 미국의 병과 허약함을 “나 혼자서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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