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중국에 “국제법 준수” 주장은 자기모순
기득권 침해 우려 해양법협약 가입하지 않아
중 ‘9단선’ 도 황당…남중국해 90% 영유권 주장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 보여줘
기득권 침해 우려 해양법협약 가입하지 않아
중 ‘9단선’ 도 황당…남중국해 90% 영유권 주장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 보여줘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 상설중재재판소의 지난 12일 남중국해 판결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명분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양쪽이 내세우는 명분은 약하기 그지없고, 되레 철저한 자국 이익 중심의 ‘제국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중재재판소가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인 이른바 ‘9단선’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판결하자,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기다렸다는 듯 성명을 내어 “유엔해양법협약에 명시돼 있듯이, 중재재판소의 결정은 최종적이며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다”고 중국을 압박했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주장은 심각한 자기모순을 담고 있다. 정작 미국은 34년 넘게 여태껏 유엔해양법협약에 가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운데,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협약은 1982년 199개국이 가입하고 67개국의 비준을 거쳐 1994년부터 발효됐다. 12해리의 영해, 200해리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국제해협과 군도 수역에서의 특수한 통항제도, 영유권 문제와국제분쟁 해결제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협약 채택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수용을 거부했고, 미국 내 의회 비준도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항행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협약에 명시된 통항 허가제도 등이 미국의 상선이나 군함의 운항, 잠수함 등의 정찰활동에 방해가 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은 채, 협약에 가입한 중국에 “국제법을 준수하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9단선’ 주장도 주변 약소국들 입장에선 황당하기 그지없다. 한나라 시대의 문헌과, 600년 전 명나라 장수 정화의 남해원정 기록 등이 주요 근거다. 게다가 ‘9단선’ 주장에 따르면, 광활한 남중국해의 90% 이상이 중국의 영유권 대상에 해당한다. 국제법적으로도 이런 거대한 영해기선을 인정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전략적·지정학적 요충지인 남중국해 제해권 차지를 위해 중국이 약소국의 이해관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한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1974년 남중국해 안에 있는 파라셀 제도를 두고 당시 함락 직전인 남베트남이 어수선한 틈을 타 무력충돌을 일으켰다. 이 무력충돌을 계기로 중국은 남베트남이 점령하던 일부 섬들을 차지했다. 필리핀이나 베트남이 중국의 일방적인 영유권 주장을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재재판소 판결은 힘의 논리가 우선시되는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을 다시 한번 드러내 준 계기가 됐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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