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필리핀 마닐라 남부 도시인 마카티 시티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규탄하는 시위대가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마닐라/EPA 연합뉴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는 1960년대 후반 석유 및 천연가스 등이 이 지역에 풍부하다는 부존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남중국해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원유는 최대 2130억배럴이며, 천연가스는 약 3조8000억㎥에 이른다. 또 남중국해는 전세계 물류의 4분의 1이 통과하는 지역이며, 중국은 전체 석유 수입량 중 약 80%를 남중국해를 거쳐 수송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과 베트남은 남중국해를 놓고 1974년과 1988년 두 차례 무력충돌을 벌였고, 1990년대에도 무력충돌까지 치닫진 않았지만 중국과 필리핀·베트남의 분쟁이 끝없이 이어졌다.
2000년대 들어 중국은 자신들의 ‘굴기’가 아세안 국가들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자 외교무대에서 평화적 외교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중국과 아세안은 2002년 ‘남중국해 행동선언’에 서명하는 방식으로 암묵적으로 ‘현상유지’에 동의하는 봉합을 하게 된다.
잠잠하던 남중국해 분쟁은 2007년 베트남이 자신들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있다고 주장하는 두 개의 천연가스전을 영국 비피(BP)사와 합작으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재발됐다. 중국도 이에 맞대응해 같은해 11월 시사 군도, 중사 군도, 난사 군도를 포함하는 싼사시를 신설해 하이난성에 편입했으며, 중국해군 순찰정이 베트남 어선에 발포해 1명의 베트남 어부가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로 휘청하는 사이에, 자신감이 붙은 중국의 대응은 상당히 공세적으로 바뀐다. 중국 국무원은 2010년 1월 베트남 등의 행동에 대응해 하이난과 파라셀 섬을 10년 내에 국제적 관광지로 육성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으며, 남중국해를 ‘핵심이익’으로 규정하는 배타적 권리를 선언했다.
중국의 공세적 행동에 맞서 미국이 남중국해에 적극적 관심을 표명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은 2010년 7월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아세안(ASEAN) 회원국들을 상대로 “남중국해는 미국의 이해와 직결된 사안”이라며,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와 해상안보 문제를 이슈화시켰다. 이후 미국은 중국과 영유권 문제로 대립하는 필리핀과 베트남에 대한 외교적 지지는 물론,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석유·천연가스·어족 자원 등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역내 갈등이 전략적 패권 싸움의 성격으로 전환된 것이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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