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제7차 대회 사흘째인 지난 5월8일 핵·경제 병진노선을 관철할 것을 주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을 첫 제재대상으로 지정한 지 하루만에 한·미 정부가 전격적으로 사드(한반도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배치를 공식발표했다. ‘김정은 제재’가 결과적으로 북한을 명분으로 한 사드 배치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미국의 사드 배치 발표는 시간 순서로 보면 미묘한 측면이 있다. 우선, 북한은 미국 정부가 ‘김정은 제재’를 발표하기 직전인 6일 밤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조선반도(한반도)의 비핵화는 위대한 수령님과 어버이 장군님의 유훈이며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령도따라 나아가는 우리 당과 군대,인민의 드팀없는 의지”라고 밝혔다.
물론, 북한이 성명에서 미군 철수 등 관철될 수 없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최근 들어 ‘세계의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언급하고 이를 ‘유훈’이라고 언급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이는 북한이 북핵 문제에 대한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신호를 미국에 보내는, 일종의 출구 전략의 시동으로 볼 수도 있는 대목이었다. ‘세계의 비핵화’는 미국과 동등한 핵보유국으로 핵군축을 하겠다는 것인 반면,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포기 가능성을 일정 정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곧바로 ‘외교적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최고지도자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북한의 출구 전략을 봉쇄해 버린 것이다.
사드 배치 공식 발표는 북한 정부 성명이 나온 지 이틀 뒤에, 그리고 ‘김정은 제재’ 하루만에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극적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유훈’이라는 북한 정부 성명을 협상 의지로 받아들이면 북한의 도발을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사드 배치 발표를 하기가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인권침해에 대한 제재를 통해 예측불가능한 위험한 인물임을 부각시킴으로써, 사드 배치 분위기를 띄우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의도성에 상관없이, 미국 정부가 결과적으로 사드 배치를 위해 전략적 시간표에 맞춰 행보를 해온 꼴이 된 것이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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