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엇 마이어스 백악관 법률고문
“백악관 대화록 공개요구 부담”
‘리크게이트’ 수사발표 앞 보수층 결속 의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관에 지명된 뒤 정실인사와 자질 시비에 휘말려온 해리엇 마이어스 백악관 법률고문이 27일 대법관 지명자직을 전격 사퇴했다. 부시 대통령은 즉각 이를 수용했다. 지난 3일 대법관에 지명된 뒤 24일만의 낙마다.
마이어스는 부시 대통령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나의 상원인준 절차가) 백악관에 짐이 될 것”이라며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고, 부시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고 백악관이 이날 오전 발표했다. 마이어스는 내달 7일부터 상원 법사위 인준청문회를 치를 예정이었다. 종신직인 연방대법관 지명자가 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퇴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부시 대통령의 개인변호사 출신으로 ‘텍사스사단’의 핵심인 마이어스는 법관 경력이 전무해 대법관에 지명됐을 때부터 진보·보수 양쪽에서 강력한 반대에 부닥쳤다. 특히 공화당과 강경보수 진영이 “마이어스의 이념적 지향이 모호하다”며 거센 반대론을 제기한 게 이번 사퇴의 결정적 배경이다. 민주당 하원지도자인 여성의원 해리 리드는 그의 사퇴 직후 “공화당의 극우파가 마이어스를 죽였다”고 맹비난했다.
마이어스는 사퇴의 변을 통해 자신의 오랜 변호사로서의 경력이 상원의 인준을 받는 데 충분하다고 믿고 있으나 상원이 백악관 대화록을 얻어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물러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미 상원 법사위는 부시 대통령이 아미어스 고문과 나눈 대화혹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으나, 부시 대통령은 “상원이 마이어스가 내게 무엇을 권고했는지, 의사 결정 과정은 어땠는지에 대한 기록을 요구하는 것은 직무상 기밀 유지 권한을 깨뜨리는 것”이라며 이 요구를 거부했다.
현지 언론들은 “이 자료들이 공개되면 마이어스가 내달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시 대통령은 “솔직한 자문을 받을 대통령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내부자료를 얻을 때까지 상원의원들이 만족하지 않을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에드워드 케네디 민주당 상원의원은 “대통령이 국민을 통합할 기회를 가졌다. 다음 지명에서는 극우가 아니라 모든 미국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어스의 사퇴는 ‘리크(누설)게이트’ 수사발표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져 워싱턴 정가를 더욱 놀라게 하고 있다. 이번주중 이뤄질 수사발표에선 부시 대통령 최측근인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딕 체니 부통령실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 등 2명의 고위관리가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두사람 중 한사람이라도 기소된다면 부시 정권에겐 또다른 정치적 타격이다.
대법관 인사 실패는 부시 대통령으로선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나름의 정치적 포석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크게이트 수사가 발표되면 부시 정권의 도덕성을 겨냥한 민주당 공세가 격렬해질 게 분명하다. 마이어스 전격 사퇴는 지지기반인 보수층을 단합시킴으로써, 리크게이트 이후의 정치적 위기를 헤쳐가겠다는 의지 표시로 해석된다. 현지 언론들은 “차기 대법관 지명자는 (마이어스보다) 훨씬 보수적 인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라크정책 논란에 대법관 지명, 리크게이트 수사발표까지 겹쳐, 워싱턴 정치권은 폭풍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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