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닥은 2013년 파산했다. 그러나 비록 주인도 바뀌고 규모도 쪼그라들었지만, 코닥은 여전히 로체스터에 있다. 무엇보다 코닥 출신 기술자, 장비, 시설 등 코닥이 남긴 인프라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키우는 자양분 역할을 하며 로체스터 부활의 엔진이 되고 있다.
첨단 축전지를 만드는 스타트업 ‘그래피닉스 디벨로프먼트’의 윌리엄 매케나 최고기술경영자는 영원한 ‘코닥맨’이었다. 1986년 코닥에 입사한 그는 2007년까지 20년 넘게 분광 분야와 디스플레이 분야의 연구와 관리를 담당했다. 코닥이 디스플레이 부문을 화학업체 롬앤하스에 팔고, 롬앤하스는 1년 뒤인 2008년 다우케미컬에 이 회사를 또 팔았다. 회사를 옮겨가며 디스플레이 업무를 계속하던 그는 다우가 2010년 디스플레이 사업을 해외로 이전하자, 로체스터에 머물기로 하고 이후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
코닥이 운영하는 ‘이스트먼 산업단지’의 덜로리스 크럭턴 부사장이 9일(현지시각) ‘코닥 공연예술 센터’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단지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가 코닥이 운영하는 ‘이스트먼 산업단지’에 제조·연구시설을 두기로 한 것은, 단지 코닥 근무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코닥이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유휴 제조시설을 활용하면 돼 별도로 공장을 지을 필요가 없었다. 또 직원들도 외부에서 채용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코닥에서 일했던 재료공학·화학·광학 분야 기술인력을 로체스터는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스타트업은 초기비용을 절약하고, 코닥은 직원들의 일자리를 유지하며 유휴 시설을 활용하는 상생 모델인 셈이다. 매케나는 “10개 가운데 하나만 살아남는다. 구글도, 페이스북도 스타트업이었다. 모든 스타트업이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될 순 없지만, 그중에 큰 기업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스트먼 산업단지에는 현재 63개의 스타트업이 들어서 있다. 2011년에는 27개에 지나지 않았다. 덜로리스 크럭턴 산업단지 부사장은 “큰 자본이 없어도 쉽게 제조할 수 있고, 다양한 기술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접근할 수 있고, 전기·용수·수송 등 코닥이 이용했던 간접자본 등을 이용할 수 있다”고 산업단지의 장점을 소개했다.
대니얼 오코넬 아메리칸퓨얼셀 최고경영자도 로체스터에 있던 제너럴모터스(GM·지엠)의 연료전지 부문이 미시간주로 이전하자, 지엠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2명과 2014년 이곳에 스타트업을 차렸다. 연료전지 부문도 코닥의 필름 코팅 제조기술과 관련돼 있어 제조를 코닥에 위탁했다. 제품 개발도 코닥 연구실에서 진행했다.
‘마을을 만드는 이웃들’(Neighbors Building Neighborhood)로 대표되는 공동체 살리기 프로그램이 로체스터의 ‘사회’를 떠받치는 큰 기둥이라면, 스타트업과 소기업들은 로체스터의 ‘경제’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로체스터의 스타트업과 소기업들이 코닥이 파산한 직후 한꺼번에 생겨난 건 아니다. 코닥의 붕괴는 지난 20년간 서서히 진행됐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조금씩 코닥을 떠난 고급인력들이 로체스터를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남아 벤처기업이나 소기업을 차려 나간 것이다. 아메리칸퓨얼셀의 최고운영책임자인 데이비드 웨터는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생겨나 이젠 수천개의 작은 회사들이 로체스터 경제를 추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체스터/글·사진 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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