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목 전당대회’라고 아시나요? 1970~80년대 한국의 야당 전당대회에서는 각목이 휘둘러지는 난투극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야당의 당권 경쟁에 정권이 개입해 공작한 결과죠. 오는 7월에 열리는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가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에 준하는 난장판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현재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막말과 기행을 일삼는 도널드 트럼프 때문입니다. 그를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타협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규칙대로 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지금 상황이 정해진 규칙으론 제어하기 힘든 지경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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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판 될 가능성 커진 공화당의 7월 전당대회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는 요식절차입니다. 이 전당대회에 앞서 벌어진 대선 후보 경선의 결과를 형식적으로 추인하고, 그 후보를 중심으로 단합하는 자리입니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에서 대선 후보가 되려면, 경선을 통해서 전체 대의원의 과반을 확보해야 합니다.
트럼프는 현재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나, 대선 후보 확정에 필요한 전체 대의원 절반을 확보할 수 있을지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5일 치러지는 위스컨신 주 경선을 계기로 이런 전망은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트럼프는 위스컨신의 여론조사에서 경쟁자인 테드 크루즈 후보에 밀리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의 대선 후보 지명을 막으려고,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대의원 선발에 관한 관례를 바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당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공화당 내에서는 알력이 터져나오고 있고, 이대로 가면 전당대회는 그런 알력이 폭발하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우선,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에서 대통령 후보를 뽑는 절차를 다시 한번 간단히 상기하죠. 경선에 출마한 주자들은 각 주별로 치러지는 경선 결과에 따라 대의원을 배분받습니다. 각 후보에게 배정된 대의원들은 전당대회에서 의무적으로 그 후보를 찍어야 합니다. 사실 이 절차는 정확하고 엄밀한 규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확립된 ‘관례’라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미국의 대선 후보 경선 제도는 1960년대에 생겼습니다. 지금까지는 경선을 치르면서 과반을 확보하는 주자가 나타나, 이런 절차는 별로 문제가 된 적이 없었습니다. 대의원 과반을 확보한 주자가 없을 경우,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규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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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남은 대의원 3분의 2 이상 확보해야
그럼, 현재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판세를 보죠. 대선 후보로 확정되려면, 전체 대의원 수의 과반을 넘는 1237명을 확보해야 합니다. 현재 선두인 트럼프는 735명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남은 경선에서 502명의 대의원을 추가해야, 대선 후보로 확정됩니다. 2위인 크루즈는 461명, 3위인 존 케이식은143명입니다. 앞으로 경선을 통해서 결정될 대의원 수는 757명입니다. 즉 경선을 통해서 트럼프나 다른 후보를 찍어야 될 의무를 가지는 대의원 수가 757명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럼, 다른 성격의 대의원도 있나요? 그렇습니다. 각 주별 당대회에서 결정되는 대의원 중에는 특정 후보를 의무적으로 찍지 않아도 되는 대의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주 노스다코타에서는 대선 후보들이 참가하는 경선을 치르지 않고, 주 당대회를 열어서 25명의 대의원을 선출했는데 이들은 특정 후보를 찍어야 할 구속력을 받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자유재량으로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 투표를 하는거죠. 그런데, 노스다코타의 대의원 25명 중 18명이 크루즈의 지지자입니다. 콜로라도의 대의원 37명 전원, 펜실베이니아의 72명 대의원 중 54명도 구속력을 받지 않습니다.
트럼프가 확실하고 안전하게 대선 후보가 되는 방법은 특정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 구속력을 받는 대의원 757명 중 502명을 경선을 통해서 확보하는 것 입니다. 757명 중 3분의 2나 되는 수입니다. 지금까지 경선에서 트럼프의 지지는 40% 내외였습니다. 최고 득표자가 모든 대의원을 독식하는 경선을 치르는 주들을 감안하면, 앞으로 남은 경선에서 그의 대의원 확보율은 많아야 60%로 예상됩니다. 42명이 걸린 위스컨신 경선에서는 최고득표자가 모든 대의원을 독식합니다. 위스컨신에선 크루즈의 승리가 예상됩니다. 위스컨신 경선에서 트럼프가 패하면, 그는 남은 경선에서 대의원 중 70%를 확보해야 합니다. 지난한 작업입니다.
물론 구속력 없는 대의원 모두가 트럼프를 찍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공화당의 기성 주류 출신들로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강합니다. 이들을 상대로 한 득표 활동은 트럼프에게는 절대로 불리한 게임입니다. 또 경선에 참가했다가 포기한 주자들이 확보한 대의원도 있습니다. 마코 루비오는 대선 후보 경선에 참가했다가 최근 포기했는데, 그가 확보한 대의원 수는 171명이 됩니다. 이 대의원들도 현재 공중에 뜬 상태입니다.
그렇다고 경선에 계속 참가하고 있는 크루즈와 케이식이 남은 경선을 통해 대의원 과반을 확보할 가능성도 없습니다. 현재 공화당 대선후보 판세는 한마디로 대의원 과반을 확보할 주자가 나올 가능성이 적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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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기성 주류,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제압할 궁리
이는 바로 트럼프를 반대하는 공화당 기성 주류들이 노리는 전략입니다. 즉 경선을 통해서 대의원 과반을 얻는 주자가 없을 경우, 전당대회를 요식절차가 아니라 대선 후보를 실제로 뽑는 절차로 만들겠다는 것 입니다. 문제는 그 경우, 전당대회를 어떻게 치러야 하는지 명확한 규정과 절차, 관례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정 후보를 찍어야 하는 구속력을 받는 대의원들은 1차투표에서 그 후보를 찍겠으나, 그 결과가 대선 후보를 확정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2차투표를 치러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으나, 그 때부터 대의원들은 누구를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속력은 어떻게 되는지 모호합니다.
당 기성 주류들은 2차 투표 때부터는 구속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 구속력이 그대로 존재한다면 2차투표를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공화당의 기성 주류들은 2차투표 때부터 트럼프가 아닌 후보에게 표를 몰아서, 그를 대선후보로 지명하자는 전략입니다. 2차투표를 치르지 않고 아예 당 지도부의 주도 아래 합의로 대선 후보를 지명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말이 합의이지, 사실은 밀실 담합이겠지요.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은 이 경우에 어떻게 대응할까요? 트럼프는 경선에서 1위를 한 자신이 대선후보로 지명되지 않을 경우,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노스다코타에서 대선 후보 주자들이 참여하지 않는 경선 대신에 당대회를 통해 비구속력 대의원을 선출한 과정은 이를 예고합니다. 이날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출마한 대의원들이 어떤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지 공개하라고 고함을 지르고, 이를 막는 당 지도부 사이에 충돌이 일었습니다. 노스다코타는 트럼프의 지지가 강한 곳이 아닌데도 이런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뉴욕타임스>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는 가장 많은 대의원 172명이 걸린 캘리포니아의 6월7일 경선을 기점으로 과반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그런데 이 분석은 어디까지나 지금까지의 추세를 바탕으로 한 것일뿐입니다. 위스컨신 경선에서 트럼프가 질 확률이 커지면서, 그의 대의원 과반 확보는 더욱 힘들어 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6월7일 캘리포니아 경선이 지나면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는 7월 공화당 전당대회! 한국인들에게 추억의 각목 전당대회를 회고시키게 될지 궁금합니다. 개봉박두!
정의길 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