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부인 미셸 여사가 20일(현지시간) 쿠바 수도 아바나의 호세마르티 국제공항에 도착한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내리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1928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 이후 88년 만이자 역대 2번째다. AP=연합뉴스
1928년 캘빈 쿨리지 전 대통령 이후 2번째
2박3일 동안 양국 관계 증진 위한 행사 참석
2박3일 동안 양국 관계 증진 위한 행사 참석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각) 현직 대통령으로는 88년 만에 처음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마지막 ‘냉전의 섬’ 쿠바 땅을 밟았다.
오바마 대통령을 태운 전용기 ‘에어포스 원’은 이날 오후 4시25분(한국시간 21일 새벽 5시25분)께 쿠바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전용기 동체에 쓰여있는 ‘United States of America’(미국)라는 영문 글씨가 미국과 쿠바 간의 관계 해빙을 상징하듯 유난히 눈에 띄었다. 비행기 앞쪽에는 각각 미국 성조기와 쿠바 국기가 걸렸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10분쯤 뒤 비행기가 활주로에 완전히 멈춰서자 밖으로 나와 환영나온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부인 미셸에게 우산을 받쳐주며 비행기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일부 미국 언론은 지난해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 때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직접 공항으로 영접 나온 점을 들어,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때도 그가 직접 공항에 나오지 않겠냐는 관측을 했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카스트로 의장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싸움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접 나온 인사들과 일일히 악수를 나누며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부터 22일까지 2박3일 동안 국빈방문 형식으로 쿠바에 머물며 양국간 관계 증진을 위한 다양한 행사에 참석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20일 저녁 식사를 한 뒤 가족과 함께 쿠바의 수도 옛 시가지(올드 아바나) 관광을 할 예정이다.
21일에는 라울 카스트로 의장과 정상회담을 열고 아바나 대통령궁에서 카스트로 의장이 주최하는 국빈 만찬에 참석한다. 22일에는 국립극장에서 쿠바 국영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연설을 한 뒤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탬파베이 레이스와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 간의 시범경기를 관람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카스트로 의장의 형이자 쿠바 혁명지도자인 피델 카스트로와는 만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카스트로 의장과의 정상회담 때와 22일 연설에서 정치범 문제 등 쿠바의 인권 현실에 대해 언급할 예정이지만, 강도가 그리 높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기본적으로 쿠바의 정치 및 정권 개혁 문제는 ‘쿠바인들에게 달려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미국 정부는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을 앞두고 최근 여행금지 해제 및 상업용 정기항공 노선 취항, 우편 자유화와 같은 조처 등을 발표하면서 분위기를 돋웠다. 비정부기구인 ‘워싱턴 오피스 라틴 아메리카’의 쿠바 전문가 제프 탈레는 <뉴욕 타임스>에 “오바마 대통령은 라틴 아메리카의 냉전을 종식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쿠바 방문을 통해 차기 정권에서도 쿠바와의 관계 개선 경로를 바꾸지 못하도록 ‘불가역적인’ 조처들을 취하기를 원한다고 분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 등의 우회로를 통해 쿠바에 대한 제재 조처를 상당부분 해제한 이유다. 하지만, 무역에 대한 금수조처를 푸는 기술적·법적 문제들은 최종적으로 의회에 권한이 있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의회는 쿠바와의 관계 개선에 부정적이어서 오바마 임기 안에 법률적으로 이 문제가 해소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1928년 1월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미주회의 6차 연례 회의에 참석한 캘빈 쿨리지 대통령 이후 88년 만이자 역대 2번째다.
한편 이날 아바나에선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반정부 인사들이 ‘오바마, 쿠바로 여행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더 이상의 인권 침해는 없어야 합니다’ 등의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다 쿠바 당국에 연행되기도 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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