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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서구 미인’에 대한 아시아인의 반란인가?

등록 2005-10-21 14:56수정 2005-10-21 17:14

한 광고에 나온 영화배우 이영애
한 광고에 나온 영화배우 이영애
WSJ, 아시아인들의 ‘한국적 외모’ 성형수술 열기 소개
한류 열풍의 수혜인가, 부작용인가.

“아시아의 한류 붐을 타고 한국 영화배우의 외모를 흉내내려는 성형수술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 명성의 경제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20일치 1면에서 “한국의 성형수술이 아시아의 얼굴을 바꾼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한국의 성형수술을 다뤘다. 이 신문은 “문화상품 수출을 통해 한국적 미인이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면서 아시아의 여성들과 일부 남성들이 얼굴을 고치기 위해 서울로 몰려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싸구려 차와 가전제품을 파는 산업국가로 알려졌던 한국이 문화상품 수출로 한국적 미가 전파되면서 아시아 일대에서 새 스타일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는 더 아름다워지기 위한 ‘한국적 스타일로의 성형수술’이 주요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신문의 보도 내용과 함께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의 한국적 외모 선호를 살펴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드라마 팬인 홍콩의 배우 지망생 케이트 슈(25)의 사례를 소개했다.

성형수술로 외모를 예쁘게 고쳐 연예인으로 성공을 거두겠다고 마음먹은 슈는 지난 4월 서울을 찾았다. 여성스런 용모에 도톰한 입술을 한 여배우 송혜교를 특히 좋아하는 그는 서울에서 코를 세우고, 눈을 더 커 보이게 하고, 턱을 깎는 수술을 했다. 그는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를 즐겨 보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한국 배우들의 사소한 동정까지 챙겨 읽는 그는 “한국 여배우들은 정말 예쁘다”며 “그들은 오똑하고 우아한 코를 가지고 있다”며 성형수술을 위해 한국행을 찾은 이유를 밝혔다.


◇ 아시아 전역서 ‘한류’ 열풍…한국인의 얼굴이 ‘아시아 미의 표준’으로

한국으로 성형수술 여행 열풍…“이영애처럼 얼굴을 수술해 주세요”

한류 열풍은 중국, 일본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는 한국 힙합과 팝, 멜로드라마, 호러물, 로맨틱코미디에 이르기까지 대거 진출해 있다. 클론은 대만에서, 장동건·김남주는 베트남에서, 이영애·김희선·장나라는 중국에서, 보아·배용준·최지우는 일본에서 인기가 높은 대중스타다. 이영애가 출연한 <대장금> 마지막회는 올해 홍콩에서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홍콩 시민 40% 이상이 시청했다. 일본에서 보아의 앨범 판매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능가했다. 2004년 중국 TV 방송국들은 100개 이상의 한국 프로를 방영했고, <겨울연가>는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였다.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보아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 보아

이로 인해 한국인의 생김새가 이 지역 미의 표준이 되고 있다. 한때 대만 등지의 언론에 김남주·채림 등의 성형 전후 사진이 공개되면서 한국이 ‘성형미인 천국’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한국의 미를 따라가려는 아시아권의 분위기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외국인 환자와 한국 외과의를 연결시켜주는 국제성형외과 타이베이 사무소를 운영하는 리이슈는 “모든 소문과 분위기 때문에 요즘 젊은이들이 성형수술을 흔한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대중문화가 성형수술을 유행시켜왔다”고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리 사장은 사업이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회사는 매달 외국인 15~20명이 한국을 방문하여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는데 환자들은 대만, 중국, 홍콩 등지에서 온다. 27살의 리 사장도 결혼에 앞두고 올해 초 서울에서 코 성형을 했다.

대만 중궈시보(中國時報)는 지난달 13일 중국 후난(湖南)성에서 이달 초부터 한국 TV 드라마 ‘대장금’ 방영이 시작된 뒤, “한국 여배우 이영애처럼 얼굴을 성형수술해 달라”는 여성들이 병원에 밀려들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적지 않은 여성들이 이영애 사진을 들고 성형외과를 찾아와 “이영애처럼 커다란 눈망울, 높은 코, 작은 입술의 얼굴로 고쳐달라”고 요청한다는 것이다. ‘한류미인’을 다룬 일본 ‘주부와 생활’ 잡지사에서도 한류 붐을 탄 한국성형의 발달내용이 소개되기도 했다.

중국 베이징, 상하이 등에는 한국의 피부미용·성형외과가 대거 진출해 있다. 이미 한국계 성형외과 40여곳이 문을 열었거나 개원을 준비하고 있으며, 올 연말까지 100여개의 한국계 병·의원이 개설을 준비 중일 정도로 성업 중이다.

◇ 서울의 한 성형외과 “고객 10% 정도가 외국인”

이런 분위기 덕택에 중국이나 일본 여성의 한국 ‘원정 성형’도 늘고 있다. 서울에서 신데렐라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의사 정종필 박사는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많은 환자들은 잡지에 나온 한국 스타의 사진을 가지고 와서 ‘이 사람처럼 고쳐 달라’고 말한다”고 말한다. 정 박사는 “고객 중 10% 정도가 외국인인데, 대부분은 중국, 타이완, 홍콩 사람”이라며 나머지는 한국사람이라고 말한다. 서울에 있는 다른 병원에서 코 성형을 전문으로 하는 정동학씨는 환자의 약 15%가 외국인이라고 말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외국인 수는 증가추세에 있는데, 그는 “한류가 시작된 이후 더 큰 폭으로 증가해왔다”고 언급한다.

한류 성형 열풍은 일본으로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달 초 서울 신사동 한 피부과에는 일본 니혼TV ‘정보통’이라는 프로그램 취재팀이 ‘한국 피부미용 치료법’을 일본에 소개하기 위해 찾아왔다.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가 배용준과 똑같은 머리 스타일과 옷 차림을 하고 한국 유명 연예인들이 받는 각종 레이저 치료 등을 촬영해 갔다. 이 병원 원장은 “일본인 관광객 중에는 인터넷으로 우리나라 연예인이 잘 다니는 피부과를 검색해 찾아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배우 김남주
배우 김남주

성형수술이 얼마나 성행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코와 눈 성형과 같은 이미지 개선 수술을 해주는 의사 수는 크게 증가해 왔다. 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는 회원 수가 2000년 이후 85%가 늘어 960명에 이른다. 한편 대한성형외과학회 회원 수는 1300명이다. (인구 3400만명의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성형외과의가 864명이다.)

이런 한류 열풍의 중심지로 한국이 이미지 변신을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한국 정부가 연예산업을 유망 수출산업으로 지정하고 전략적으로 지원하면서부터다. 특히 영화산업은 정부의 지원과 민간 투자자금의 유입으로 큰 혜택을 누렸다.

◇ 백인 미인들의 이미지에 대한 아시아인들의 반란?

성형열풍은 커다란 눈, 오똑한 코, 갸름한 얼굴을 전형적인 미인으로 보는 한국 내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 또 취업 등에서 ‘단정한 용모’를 선호하는 분위기도 이를 부추겼다. 연예인들의 성형은 이제 ‘보편적인 현실’이며, 자두, 옥주현, 신지 등에서 보듯 대중에게 고백하는 일이 더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솔직한 그들의 고백에 대중들은 박수를 보낸다.

아시아인들은 한국형 미인을 아시아를 대표한 새로운 미적 이미지로 선호하지만, 정작 한국인 스스로 자신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만족도는 아시아 최저 수준이다. 한국인들의 외모 선호가 유별나기 때문이다.

아시아인들이 선호하는 한국형 미인, 한국인의 미적 만족도는 아시아 최저

다국적 생활용품·화장품 기업인 유니레버가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10개 지역 총 2100명(한국 200명)의 15∼45살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달 26일 발표한 ‘아름다움에 관한 아시아 여성들의 의식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외모를 향상시키기 위해 성형수술을 고려해 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 여성들의 53%가 “그렇다”고 답해 1위를 차지했다. 말레이시아(4%) 중국(9%) 싱가포르(10%)에 비해 무려 5∼1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도 이를 방증한다.

이 조사에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답한 한국 여성은 1% 정도였다. 조사에서 아시아 여성 전체가 3% 수준이었던 것에 비해서도 낮은 것이다. 한국 여성의 43%는 스스로를 너무 뚱뚱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10명 가운데 8명은 30세 이전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류열풍을 탄 성형 분위기에 대해 “일부 비평가들은 국제적 영상물의 대부분을 장악하는 백인 미인들의 이미지에 대한 아시아인들의 반란으로 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전국여성연합의 관계자 왕시메이는 “한국 문화는 연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한국 드라마와 예쁜 여배우에 너무 관심을 쏟는 것 같다”며 미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외모에 너무 의지하는 여성들에게 장기적인 심리적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비판자들은 또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의 용모에 대해 호감을 갖는 부분은 정확하게 그들을 더 서구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특징들이란 점을 지적한다. 아시아인들이 한국인을 이상형으로 꼽는 이유는 다른 아시아인들보다 피부가 희고, 오똑한 코를 가졌다는 것인데, 이는 서양인과 비슷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또 일부 한국 여배우들이 공개적으로 성형수술 사실을 고백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수술 전 얼굴과 수술 후 얼굴이 널리 유포되면서 한국의 거의 모든 배우들이 성형수술을 받았을 것이라는 억측이 퍼지게 된 것도 성형수술 붐에 기여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분석했다.

한편, 지난해 정 박사의 병원을 찾은 중국 남부 포샨 출신 리빙핑은 그녀가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의 생김새 대부분이 성형기술의 결과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녀는 “한국 여배우들은 예쁘다. 한국의 성형기술 때문에 아주 부드럽고 우아한 스타일을 가진 것 같다. 돈과 재능이 있다면 우리도 아름답게 보이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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