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앞에서 35년간 반핵 시위를 벌여온 피치오토 콘셉시온이 숨졌다. 사진은 지난 2012년 백악관 앞 움막에서 반핵 시위를 벌이던 당시 모습.
백악관 앞 명소 됐던 반핵 1인 시위
콘셉시온 피치오토, 1981년부터 자리
콘셉시온 피치오토, 1981년부터 자리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30년 넘게 반핵 시위를 벌여 관광코스로까지 자리 잡았던 여성 운동가가 25일(현지시각) 숨졌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콘셉시온 피치오토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지난 1981년부터 시작해 숨지기 직전까지 35년간 백악관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여 이 부문 최장 기록을 갖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피치오토가 워싱턴의 노숙 여성을 위한 비영리 단체 ‘N 스트리트 빌리지’가 운영하는 구호시설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숨졌으며 80살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피치오토 본인이 직접 밝힌 나이는 70살이다.
스페인 출신으로 1960년까지 주미 스페인대사관에서 일했던 피치오토는 1969년 이탈리아 출신 남편과 결혼하고 딸을 입양했다. 그러나 남편과 헤어지면서 딸을 되찾아 달라는 호소를 하기 위해 1979년 백악관으로 왔다. 이때 백악관 앞에서 그는 방랑 평화운동가인 윌리엄 토머스를 만나 1981년부터 지금의 백악관 앞 자리에서 반핵 시위에 들어갔다. 그러다 3년 뒤 엘런 벤저민이라는 여성이 이 시위 대열에 합류했고, 곧바로 엘런과 토머스는 결혼했다. 피치오토는 상당한 질투심으로 엘런에 대해 적의를 드러내기도 했으나, 묘한 긴장 속에서도 이들 트리오의 반핵 시위는 25년간 계속 이어졌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1993년 이들의 비핵화 청원과 법률이 워싱턴DC 주민투표에 부쳐진 적은 있었지만 법률이 의회까지 올라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피치오토와 토머스 부부의 농성은 명물이 돼 워싱턴DC 투어에 포함됐고 2004년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화씨 9·11>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9년 토머스가 숨지자, 피치오토는 혼자서 시위를 이어가기로 결심하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밤낮으로 백악관 앞 시위 움막을 계속 지켰다. 그러나 2012년 피치오토가 자전거를 타다 택시와 부딪혀 크게 다친 뒤 기력이 쇠하면서 혼자서 농성을 이어가지 못해 젊은 운동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워싱턴에서는 시위자가 계속 머물지 않을 경우, 시위 텐트 등을 철거한다.
피치오토는 지난 2012년 <한겨레>와의 인터뷰(▶ 관련기사:백악관 옆 비닐움막, 할머니는 32년째 피케팅)에서 ‘왜 이렇게 오랜 세월 핵반대 시위를 하느냐’는 물음에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이 일에 내 생을 희생시키기로 30년 전 결심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며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시위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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