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권유에도 미국 의회의 차기 하원의장으로 출마를 계속 거부하던 폴 라이언 공화당 의원(하원 예산위원장)이 ‘조건부’ 출마 의사를 밝혔다. 하원의장은 미국 내 실질적인 ‘넘버 3’로, 의회와 행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시엔엔>(CNN> 방송 등 미국 언론은 20일 “라이언 의원이 하원의장으로 기꺼이 봉사할 생각이 있으며, 이번 주 안에 결정하겠다는 뜻을 공화당 하원의원들에게 밝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공화당 내부에서만 선출되면 라이언 의원은 관례대로 하원의장이 된다. 라이언 의원은 이날 공화당 의원 전원이 모인 가운데 열린 비공개 회의에서 이런 자신의 구상을 밝혔으며, 회의 뒤 기자들에게도 “의회나 공화당뿐 아니라, 미국을 위해서도 아주 심각한 순간이다. 미국이 절박하게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하원의장이 되면 1891년 민주당 소속의 찰스 크리스프가 46살에 의장이 된 이후 124년만에 40대 의장이 탄생한다.
그러나 라이언 의원은 출마 조건으로 긴 목록을 동료 공화당 의원들에게 내밀었다. 우선, 그는 공화당 내 강경 보수 성향의 프리덤코커스 등 주요 3그룹의 지지를 모두 얻는 경우에만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40명 안팎으로 구성된 티파티 성향의 프리덤코커스는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사임 발표와 차기 하원의장으로 유력시되던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의 축출에 앞장섰다. 따라서 이런 전철을 되밟지 않기 위해 프리덤코커스에 자신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두번째로 그는 현직 하원의장을 몰아내는 절차를 더 까다롭게 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는 ‘하원의장 불신임 결의’를 더 어렵게 하겠다는 뜻으로, 이 역시 프리덤코커스가 이를 무기로 베이너 하원의장의 퇴임을 몰아붙인 행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세번째로, 그는 선거자금 모금 활동은 하지 않는 대신, “당과 하원의 메시지를 소통시키는 데 더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2년에 한번씩 치러지는 하원 선거를 지원하기 위해 하원의장은 전국을 돌며 선거자금을 모은다. 이 역시 하원의장의 고된 업무 가운데 하나다.
네번째로, 그는 일과 생활을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40대 중반인 그는, 아이가 어린 탓에 좀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강경파들이 라이언 의원의 이런 ‘무리하면서도 영리한’ 요구를 수용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강경파들은 여전히 라이언 의원의 하원의장 출마에 차가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강경파들 입장에선 ‘항복 선언’을 하고 조건없이 라이언 의원의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당을 흔들어 댄다는 비난을 다시 한번 감수하고라도 거부하는 선택만 남은 셈이다.
라이언 의원은 하원 예산위원장을 맡고 있는 8선 의원으로, 2012년 대선 당시 밋 롬니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정치력도 상당하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빈곤퇴치 캠페인’이 호응을 얻으면서 유력 대선 후보로까지 거론됐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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