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 지역방송사 <더블유디비제이>(WDBJ)의 전직 기자 베스터 리 플래너건이 26일 카메라기자 애덤 워드의 어깨 너머로 생방송 인터뷰 중인 앨리슨 파커 기자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 플래너건은 범행 과정을 직접 영상 촬영했는데, 이 사진은 그가 두 기자를 쏴 죽인 뒤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영상의 한 장면이다. 베드퍼드/AP 연합뉴스
총격범, 범행 노트에 “나는 인간 화약고”
입사 11개월만에 해고당한 40대
범행뒤 ‘총격 동기’ ABC에 전송
“흑인·동성애자 차별” 주장하나
인격장애 부적응이 원인 ‘분석’
범인, 경찰 추격받고 도주중 자살
입사 11개월만에 해고당한 40대
범행뒤 ‘총격 동기’ ABC에 전송
“흑인·동성애자 차별” 주장하나
인격장애 부적응이 원인 ‘분석’
범인, 경찰 추격받고 도주중 자살
미국에서 생방송을 하던 한 지역방송국 기자 2명이 전직 동료기자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특히, 총성과 비명 소리가 그대로 생방송으로 중계돼, 총기 규제에 무기력한 미국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범인은 방송사 재직 때 인종차별 등을 당했다고 주장했으나, ‘인격 장애’에 따른 범행일 가능성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에이피>(AP) 통신 등은 버지니아주 로어노크에 위치한 지역방송사 <더블유디비제이>(WDBJ) 소속의 앨리슨 파커(24) 기자와 카메라기자 애덤 워드(27)가 26일 아침 6시45분께 생방송을 진행하던 중 총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들은 프랭클린 카운티의 한 복합휴양시설의 개발 문제를 놓고 지역 상공회의소 대표인 비키 가드너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범인은 이 방송사 전직 기자인 베스터 리 플래너건(41)으로 밝혀졌다.
플래너건은 모두 15발의 총격을 가했으며, 이 중 앞에 쏜 8발의 총격 소리와 비명 등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전해졌다. 워드 기자가 총격을 받고 떨어뜨린 카메라에는 플래너건이 권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플래너건은 경찰의 추격을 피해 차량을 타고 도주하던 중 총격 자살을 시도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플래너건은 범행을 저지르고 2시간쯤 뒤 범행 동기가 담긴 23쪽짜리의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내는 자살 노트’를 <에이비시>(ABC) 방송에 팩시밀리로 보냈다.
플래너건은 이 노트에서 자신을 곧 폭발할 것 같은 ‘인간 화약고’로 묘사하며, 흑인인 데다가 성적 지향이 동성애여서 수시로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직접적인 범행 동기는 지난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흑인교회의 총기난사 사건과 2007년 한인 학생 조승희가 저지른 버지니아텍 총기 난사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찰스턴의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에서 백인 우월주의자인 딜런 루프가 총기를 난사해 9명이 숨진 사건을 들면서 “인종전쟁을 선동하고 싶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플래너건은 하느님이 자신에게 이번 계획을 실행에 옮기도록 했다고도 주장하는 등 분열적 증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플래너건은 인종차별이 범행의 직접적인 동기인 것처럼 주장했으나, 당시 직장 상사나 동료들은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그는 이 방송사에 입사한 지 11개월 만인 2013년 2월 해고당했다. 그의 채용과 해고를 결정했던 이 방송사의 당시 뉴스 편집국장 댄 데니슨은 “그는 실적 문제로 해고된 것”이라며 “우리는 철저한 조사를 했지만, 누군가 그에게 인종차별을 가했다는 아무런 증거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러 지역방송국을 전전했는데, 1999년에 근무했던 다른 방송국의 한 직장 동료도 “그는 정상이 아니었고, 뉴스 앵커를 연기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며 “다른 기자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였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그가 인격 장애로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쌓였던 불만이 불행한 사태를 초래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편, 플래너건은 사전에 범행을 치밀하게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범행 몇주전 <에이비시>(ABC) 방송에 기사를 보낼 일이 있다며 팩스번호를 물었고, 범행을 저지른 뒤 미리 렌트해둔 차로 갈아타기도 했다. 또한 범행 현장에서도 생방송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리거나 자살 직전에 자신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권총을 겨눴던 영상을 올려놓는 등 범행 효과를 극대화하려 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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