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자치령…파산 선언 자격없어
카리브해의 미국 자치령 푸에르토리코가 막대한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며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를 언급하고 나섰다. 푸에르토리코는 1일 약 720억달러의 공채 상환 시한을 맞지만 재정은 바닥이다.
알레한드로 가르시아 파디야 지사는 지난 29일 텔레비전 생방송 연설에서, 워싱턴에 채무 재조정을 요청하고 채권자들의 고통 분담을 호소했다고 <로이터> 등 외신들이 전했다. 파디야 지사는 “정부가 세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여도 우리의 부채 규모를 볼 때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유일한 탈출법은 채권자들도 어느정도 희생을 감수하기로 뜻을 모으고 힘을 합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년간의 상환 유예를 추진하는 한편 오는 8월30일까지 경제·금융 개혁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에르토리코 채권의 대부분은 미국 금융업체와 기업들이 갖고 있다.
문제는 푸에르토리코가 미 연방파산법 9장에 따른 ‘파산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연방파산법에 따르면 도시가 파산할 경우 그 도시의 채권 보유자들이 투자금 일부를 회수할 수 있다, 2012년 디트로이트 파산 신청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연방으로부터 일정정도 독립과 자치를 보장받는 주 정부나 자치령은 파산을 선언할 자격이 없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는 연방정부가 푸에르토리코에 구제금융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의회에서도 공화당 보수파들은 푸에르토리코의 채무 재조정에 단호히 반대한다.
그러나 2016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치권에선 푸에르토리코 문제가 민감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29일 보도했다. 푸에르토리코에 가족이나 친인척을 남겨둔 채 본토로 건너온 이주민 유권자들이 플로리다주 같은 스윙주(특정 정당이 압도적 지지를 얻지 못한 경합 주)에서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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