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흑인·일본계 등 저항력 실험
건강검진 등 후속조처도 안해줘
실험대상 군인들 지금까지 고통
국방부 “미군은 더이상 실험 안해”
건강검진 등 후속조처도 안해줘
실험대상 군인들 지금까지 고통
국방부 “미군은 더이상 실험 안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젊은 미군이었던 롤린스 에드워즈(93)는 12명의 다른 군인들과 함께 나무로 만든 가스실로 들어갔다. 장교들은 문을 잠궜고, 곧이어 겨자가스와 다른 독가스를 섞은 화학작용제가 파이프를 통해 가스실로 들어왔다.
에드워드는 “가스실에 있던 군인들이 비명과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고, 탈출을 시도했다. 몇명은 기절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미군이 2차 세계대전 때 자국 군인 6만명을 대상으로 비밀리에 화학가스 실험을 했다는 사실은 지난 1993년에 비밀해제됐지만, 실제 에드워즈가 실험 대상이 된 이유는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고 미 공영방송 <엔피아르>(NPR)가 22일 보도했다. 방송은 당시 미군의 실험이 백인·흑인·일본계 미국인 등 인종별로 이뤄졌음을 다양한 인터뷰와 논문 등을 근거로 전했다. 미군이 실험에 사용한 겨자가스는 접촉 뒤 수초 안에 유전자를 손상시키며, 피부 수포를 유발하고, 심하면 백혈병이나 피부암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우선, 백인 군인들은 다른 소수인종 군인들과 비교하기 위한 ‘과학적 통제집단’이었다. 백인에 대한 실험결과가 다른 인종과 비교를 위한 일종의 기준점이었던 셈이다. 일본계 미국인들은 화학가스가 적군인 일본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실험 대상으로 동원됐다.
흑인과 푸에르토리코 출신 군인들이 화학가스에 좀더 저항력이 있음이 입증되면 이들을 화학전의 최전선에 배치하고 백인들은 후방에 배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방송은 소개했다. 실제 에드워드도 “당시 장교들이 검은 피부에 화학가스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실험 대상이 된 군인들은 지금까지도 피부 발진이 계속되는 등의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군은 실험 이후 이들에 대한 건강검진 등 후속 조처도 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비밀 준수 서약 때문에 의사들에게 말을 할 수도 없어, 일부 군인들은 적절한 치료조차 받을 수 없었다. 스티브 워런 미 국방부 대변인은 “분명한 것은 미군은 더이상 화학무기 실험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며, 현재의 군대와 2차대전의 군대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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