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거슨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퍼거슨 시위는 미국 미주리주의 퍼거슨시에서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18)이 지난 8월 백인 경찰 대런 윌슨(28)이 쏜 총에 맞아 숨진 뒤 일어난 대규모 시위를 말합니다. 소수자에 대한 과잉진압 논란으로 시위는 확산됐습니다. 지난 24일 윌슨에 대해 불기소 결정이 내려지면서 시위 강도는 더 세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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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윌슨에 대한 불기소 결정의 주체는 검찰이 아닙니다. 기사를 보면 아시겠지만 불기소 결정은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대배심이 내렸습니다. ‘대배심’이라고 하니, 뭔가 배심원과 관련이 있을 것도 같고, 그렇다면 ‘법원에서 내린 결정인가?’하는 의문도 듭니다. 반면 “(대배심을) 검사가 소집했고, 조사와 증인신문까지 했다”는 기사들을 보자면 결국 검찰이 하는 역할의 일부라는 짐작이 가기도 합니다.
미국 재판의 배심원 제도는 잘 아실 겁니다. 무작위로 선정된 일반인들이 재판에 참여해 만장일치로 피고인의 유무죄를 결정합니다. 권고적 효력만을 지닌 한국의 국민참여재판과 달리 미국 배심재판에서 판사는 배심원의 유무죄 평결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보통 12명의 배심원이 참여합니다.
피고인의 유무죄를 결정하는 이런 배심원 제도를 일반적으로 소배심(petit jury)이라고 부릅니다. 반면 대배심(grand jury)에 참여하는 인원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최소 16명에서 최대 23명에 이릅니다. 대배심과의 차이가 ‘감지’ 되시나요? 참여하는 배심원의 인원을 비교해 소배심과 대배심으로 나눠 부르는 것이지요.
하지만 배심원 수보다 더 중요한 소배심과 대배심의 궁극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소배심은 ‘피고인의 유무죄 여부’를 결정하는 데 반해 대배심은 ‘피의자의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입니다.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소배심은 ‘배심(원이 참여하는)재판’으로 대배심은 ‘기소(여부를 결정하는)배심’으로 보면 이해가 더 쉬울 겁니다.
●소배심(petit jury): 유무죄 여부 결정, 배심원수 12명, 만장일치, 공개
●대배심(grand jury): 기소 여부 결정, 배심원수 16~23명, 다수결, 비공개
형사재판에서 일반인인 배심원들이 기소 여부나 유무죄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배심제도는 영국에서 기원한 미국 특유의 사법제도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형사재판에서 공정성을 확보하고 민주주의의 이념을 최대한 반영하자는 의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찰 대런 윌슨의 대배심 과정이 왜 유족과 시민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걸까요? <한겨레>가 27일 보도한 기사,
‘초동수사 통상절차 어겨…경관 신문 녹취도 안해’를 보면 유족들은 ‘담당 검사가 사건을 편파적으로 처리했다’는 불만을 제기합니다.
그 불만은 △특별검사를 임명해달라는 유족 요구를 거부했고 △대배심 참가자들에게 판단을 떠넘겼으며 △피의자를 신문하면서 반대신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로 요약됩니다.
대배심 절차는 검사가 기소안을 대배심에 제출하면서 시작됩니다. 검사의 부당한 기소로부터 피의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배심원들은 기소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제출되었는지를 심사합니다. 그런데 기사를 보면 “통상적으로 검사가 직접 사건을 수사해 대배심에 기소 여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뒤 판단을 구하는 데 반해, 로버트 매컬러 검사는 법률 비전문가인 대배심 참가자들에게 방대한 자료를 풀어놓고 어떠한 방향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자체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애초부터 기소를 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다고 보는 거지요.
매컬러 검사가 피의자의 진술에 우호적이었던데 반해 그와 대립하는 목격자의 진술엔 공격적이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대배심 과정에서 피의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직접 심사에 나가거나 스스로 증거를 제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매컬러 검사는 대배심에 피의자를 직접 불렀습니다. 반대신문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대배심에선 보통 피의자를 부르지 않는다.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부르기도 하지만 어떤 사건으로 부르는지도 피의자에게 사전에 설명하지 않는다. 대런 윌슨의 경우엔 예외적으로 항변할 기회를 준 것이고 그 과정에서 피의자 쪽 얘기를 일방적으로 들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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