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민영화, 뒤늦은 후회] 철도강국 아르헨티나의 몰락
철도연장 3분의1 수준으로 줄어
차량·철로 빼고 사업운영권 불하
비효율적 운영에 비용 상승 불러 아르헨티나 철도산업 민영화는 1989년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집권한 메넴 정부 때 이뤄졌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철도산업은 정부에서 가장 많은 공공지원금을 받는 만성적인 적자 산업의 하나였다. 하지만 철도는 국가기간망이고 막대한 시설투자 비용이 필요해 공공성이 강하다는 구조적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철로와 차량은 국가가 소유하고 사업운영권만 민간자본에 양도하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진행했다. 화물철도는 6개로, 수도권과 도심 여객철도는 7개로 분할해 민간사업자들에 팔아넘겼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철도 민영화로 철도산업의 효율성과 경쟁성을 도모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정부 재정지출을 줄이고, 사용자의 서비스를 개선하고, 시설과 장비를 교체·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는 배반당했다. 초기의 낙관적 전망과 달리 운행 수입이 감소했다. 방대한 규모의 시설 운영에 부담을 느낀 민간사업자들은 애초 약속과 달리 서비스 개선에 필요한 투자를 거의 이행하지 않았다. 더욱이 여객철도의 수익성 감소 탓에 민간사업자의 적자를 정부가 보조금 지원으로 메워줘야 했다. 재정지출 감소라는 목표도 실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르헨티나 철도는 1857년에 최초로 건설됐다. 1947년에는 세계에서 10번째로 긴 4만7000㎞에 이르는 철도망을 구축했다. 그러나 민영화 이후 수익이 없다는 이유로 적자노선이 대거 폐쇄됐다. 지금 아르헨티나의 철도망은 1만8000㎞다. 민영화 이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준 것이다. 화물 수송에서도 철도는 전체 물량의 8%만을 감당하고 있을 뿐이다. 철도 민영화가 아르헨티나 철도산업에 끼친 영향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철도산업에 독점체제가 구축됐고, 통합적 교통체제 구축 목표는 좌절됐다. 애초 아르헨티나 정부는 철도 민영화로 경쟁체제를 도입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실제론 일부 거대 운수회사에 최대 40년까지 장기 사업면허를 부여해 오히려 독점체제를 낳았다. 민간기업에 부여한 독점권은 운영의 비효율성과 부패만 심화시켰다. 더욱이 민영화로 철도 운영과 관리가 분리돼, 각 노선의 필요와 가능성에 따른 자원 분배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결과, 전체 운영 비용이 되레 높아졌고 통합적인 교통체제 구축도 불가능해졌다. 둘째, 민간기업은 철도시설에 대한 투자를 회피했고, 정부의 과도한 보조금 지원 탓에 국가 재정 부담이 오히려 커졌다. 운영권을 불하받은 민간 철도회사들은 애초 약속과 달리 시설투자에 소극적이었다. 투자 재원 회수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를 내다본 투자는 언감생심이다. 정부는 철도 운행요금 인상을 통제하는 대신 민간사업자한테 운행 보조금을 지급했다. 이는 민간기업이 투자는 게을리하며 막대한 정부 보조금만 받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국가 재정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 예컨대 2013년 1월부터 7월까지 아르헨티나 정부가 민간 철도회사에 지원한 보조금이 4억3000만달러에 이른다. 민간자본 내세운 수익성 논리에
적자노선 없애며 역 800곳 문닫고
시설투자 부족해 안전사고 잇따라
시민단체는 전면 재국유화 촉구 셋째, 서비스 질이 나빠졌고, 시민의 이동권이 제한받았다. 민영화 이후 잦은 열차운행 지연과 취소로 서비스의 질이 추락했다. 열차 운행 횟수가 줄어 이용객들이 만원 열차를 이용하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수익성을 최우선시하는 민간기업은 ‘돈이 되지 않는’ 장거리 지방노선을 다수 폐쇄했다. 도심과 교외를 연결하는 간선철도의 경우 70%가 운행을 멈췄다. 그 결과 800개의 역사가 폐쇄됐다. 섬처럼 고립된 마을 주민들이 도시로 삶터를 옮겼으나 이내 새로운 도시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지역간 불평등이 심화했다. ‘돈이 되지 않는’ 철도 노선의 폐쇄와 축소는 직접적으로는 실업을 낳았고, 간접적으로는 지역산업의 발전에 악영향을 끼쳤다. 넷째,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실업자가 폭증했다. 민간기업은 비용을 절감하고 흑자경영으로 전환한다며 대규모 감원을 단행했다. 민영화 직후 8만5천명의 노동자가 해고됐다. 1991년 11만7천명이던 철도노동자 숫자가 지금은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대량 해고에 따른 철도서비스 축소로 관련 일자리도 사라졌다. 대량 해고는 실업자만 증가시킨 게 아니다. 철도산업의 현장 기술력의 기반을 붕괴시켰다. 철도의 안전한 운행에 악영향을 끼쳤다. 다섯째, 시민 안전이 위험에 빠졌다. 1990년 철도 민영화 이후 철도 사고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철도 사고는 대부분 민간기업의 시설 투자 기피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간기업들은 애초 약속과 달리 기반시설 구축, 철도차량·신호장치 투자 등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 최근 20개월 사이에 3건의 대형 여객철도 사고가 발생해, 수십명이 죽었다. 이런 문제점 탓에 아르헨티나 철도 민영화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지적이 많다. 라쁠라따 대학의 루시아노 라나레 교수는 “철도 민영화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보다도 혼란스럽고 위험한 상태에서 위태롭게 여행해야 하는 이용자들”이며 “최근 발생한 대형 열차 참사는 투자 부재와 서비스 악화가 초래한 인재”라고 비판했다. 철도 이용객의 불만과 불신은 특히 2012년 2월 온세역 열차충돌사고를 계기로 최고조에 달했다. 사고 뒤 아르헨티나는 정부는 운영사인 TBA사의 사업면허를 박탈했다. 그리고 35억달러를 투입해 400대가 넘는 차량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선로·역사·열차바퀴 등을 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래도 성난 민심이 잦아들지 않자 지난해 9월12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나서 사고가 잦은 사르미엔토와 미트레 노선의 운영을 국영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세르히오 마사를 비롯한 주요 야당 대표들은 이러한 정부의 사후 대책과 철도정책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안정적인 정책이 마련되지 못하면 그 대가를 시민들이 치르게 된다며 “철도산업은 국가의 핵심 산업이어야 한다. 정치적 편협함에서 벗어나 10년을 바라보는 계획을 설계하고 이를 집권정부가 이행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시민단체들도 수십명의 인명 피해를 낸 열차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미미하다고 강한 불만을 제기하며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물론 모든 철도산업의 완전한 국유화와 사회적 사업으로의 전환을 주장했다. 전면적인 재국유화 요구다. 아르헨티나 철도 민영화 20년 역사가 웅변하는 건, 철도 민영화가 안전성과 공공성을 훼손하고, 그 부담을 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다. 손혜현/아르헨티나 또르꾸아또 디 뗄라 대학 정치학 박사 과정(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초빙연구원 이화여대 지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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