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미국·중남미

‘인종갈등 아이콘’ 비극적 삶 마침표

등록 2012-06-18 19:39

로드니 킹(47)
로드니 킹(47)
LA폭동 촉발 로드니 킹 돌연 사망
지난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을 촉발한 로드니 킹(47·사진)이 황망하게 숨졌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리앨토에 살던 킹은 17일(현지시각) 자신의 집 뒷마당 수영장에서 익사했다.

평범한 흑인 청년이었던 킹이 유명인사가 된 것은 91년 3월3일 백인 경찰관들에게 무자비하게 얻어맞는 장면이 우연히 인근 주민의 비디오카메라에 담기면서부터다. 킹은 그날 밤 술에 취해 자동차를 몰고 가다 경찰의 정지명령을 무시한 채 달아났고, 추적하던 경찰은 현장에서 그를 붙잡아 길바닥에 눕혀놓은 채 몽둥이 등으로 마구잡이 폭행을 가했다. 이 비디오 화면이 방송에 나가 흑인 사회가 술렁이던 차에 공권력 남용 혐의로 기소된 백인 경찰관 4명이 이듬해인 92년 4월29일 재판에서 무죄평결을 받자 흑인들은 흥분했다. 흑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지나던 차량을 세우고 백인 운전자를 구타고, 상점을 습격해 약탈과 방화를 저질렀다.

불량기 있는 흑인 청년에서 인종갈등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킹은 94년 보상금 380만달러를 받으며 부와 명성을 얻었으나, 이후에도 그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그는 가정폭력·음주운전·과속운전 등으로 11차례나 경찰에 체포됐고, 두번 이혼했고, 사업마다 망해 보상금도 모두 탕진해 나중에는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이었다. 또 폭행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었다.

킹은 최근 세번째 결혼을 앞두고 새 출발을 다짐했고 특히 올해 엘에이 폭동 20돌을 맞아 자서전 발간, 강연, 인터뷰 등으로 또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을 폭행했던 경찰관들을 모두 용서했다고 밝혔다.

킹은 엘에이 폭동의 최대 피해자였던 한인들과도 악연을 갖고 있다. 1주일간 이어진 폭동의 최대 피해자는 흑인 동네 가까이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던 한인들이었다. 폭동 당시 피해 업소 1만여개 가운데 2800여개가 한인 업소였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김포공항 옆 20년간 숨겨진 비밀습지
이석기 ‘애국가 발언’은 고도의 전략?
[정연주 칼럼] 알코올 중독자와 원숭이 검사
블리자드 결국 백기…‘디아블로3’ 환불키로
택시에서 분실한 스마트폰 어디로 갔나 했더니…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백악관 “한국 상황에 계속 공개적 발언”…윤 대통령 견제 의지 피력 1.

백악관 “한국 상황에 계속 공개적 발언”…윤 대통령 견제 의지 피력

“윤석열 비상계엄은 매우 문제적, 심각한 오판”…미 관리들 노골적 비판 2.

“윤석열 비상계엄은 매우 문제적, 심각한 오판”…미 관리들 노골적 비판

고속도로 운전 중 다리에 뱀이 스멀스멀…기겁한 운전자 대응은 3.

고속도로 운전 중 다리에 뱀이 스멀스멀…기겁한 운전자 대응은

주요 외신들 “한국에서 계엄령이라니…충격, 기괴한 일” 4.

주요 외신들 “한국에서 계엄령이라니…충격, 기괴한 일”

중국, 한국 계엄 사태에 “내정 언급 않겠다” 5.

중국, 한국 계엄 사태에 “내정 언급 않겠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