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대 교수팀, 8년 추적 “89년 처형된 데루나, 진범 아냐”
“수사·기소·변론 모두 부실”…사형제도 존폐논란 재점화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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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를 둘러싼 오래된 쟁점 가운데 하나는 ‘무고한 사람’의 처형 가능성이다. 미국에서 다시 이 논란이 불붙을 전망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의 제임스 리브먼 교수와 학생들이 1989년 텍사스주 코퍼스크리스티에서 살인강도 혐의로 처형된 카를로스 데루나가 무죄임을 주장하고 나섰다고 미국 온라인매체 <허핑턴 포스트>와 영국 <가디언>이 15일 보도했다. 데루나는 스무살 때인 1983년 2월, 한 주유소의 24살 여직원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될 때부터 6년 뒤 독극물 주사를 맞는 순간까지 줄곧 자신의 무죄를 호소했다.
리브먼 교수가 이끄는 인권법연구팀은 지난 2004년부터 8년 동안 이 사건을 재추적했다. 100여명의 증언을 듣고 900여개의 물증을 검토했으며, 수많은 사진들을 분석한 뒤, 데루나가 억울하게 처형당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의 엉성한 수사, 검찰의 부실한 기소, 그리고 피고 쪽의 미약한 변론이 데루나를 사형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건의 재조사 과정을 자세히 기록한 436쪽 분량의 보고서를 계간 저널 <인권법 연구>에 통째로 실었다.
피살자인 완다 로페즈가 사건 당시 ‘911 응급전화’에 신고한 녹음파일에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와 범인에게 자비를 구하는 애절한 목소리가 담겼다. 데루나는 사건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픽업트럭 밑에 숨어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재판 과정에서 데루나에게 불리한 목격자 증언들이 쏟아졌다. 사건 당시 그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는 것을 봤다는 증언과 주유소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가 나왔다. 또다른 부부는 한 남자가 주유소에서 달아나는 것을 봤다고 증언한 뒤, 경찰이 데루나의 사진을 보여주자 동일인이라고 지목했다. 데루나의 주머니에 꼬깃꼬깃 말려있던 149달러의 지폐도 살인강도의 정황이 됐다.
그러나 리브먼 교수는 재판 과정과 판결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우선 목격자들의 증언이 엇갈리는데, 이는 목격자들이 한 명 이상의 용의자를 봤다는 것이다. 또 바닥과 벽에 튄 핏자국으로 미뤄 용의자의 신발과 옷에도 피가 묻었어야 하는데 데루나의 옷과 신발은 깨끗했다.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데루나의 오랜 친구인 카를로스 에르난데스가 진범일 수 있다는 정황이 나왔는데도 검찰과 경찰이 이를 무시했다.
데루나는 체포된 지 몇달이 지나서야 사건 당시 자신은 주유소 건너편에 있었고, 에르난데스가 주유소 매점에 담배를 사러 갔다며 사실상 에르난데스를 진범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법정은 그의 뒤늦은 무죄 주장을 신뢰하지 않았다.
당시 데루나를 변호했던 제임스 로런스는 “그가 우리(변호인)에게 협조하지 않았고 그래서 목숨을 잃었다”며 “이 사건은 내 삶의 곤혹스러운 부분 중 하나”라고 말했다. 미국에선 1976년 사형제 부활 이후 지금까지 1295명이 사형됐는데, 이 중 텍사스주가 482건으로 가장 많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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