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이명박 대통령이 미 의회 상하원합동연설 뒤 한국전 참전 의원들에게 다가가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이날 연설문의 초안을 미국의 연설문 작성 전문 업체가 작성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워싱턴/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4만6500달러 지급…“국익 담겨야 하는데” 부적절 논란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미국 국빈방문 때 의회와 상공회의소 등에서 했던 연설은 워싱턴에 있는 연설문 전문회사가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그 비용으로 이 회사에 4만6500달러(약 5100만원)가 지급됐다.
주미한국대사관은 이 대통령의 지난달 11~15일 미국 방문을 앞두고 연설문 작성 전문회사인 웨스트윙라이터스에 의뢰해 이 대통령의 의회 합동연설문 등의 초안을 잡고 수정하게 했다고, <세계일보>가 최근 공개된 미 법무부의 외국로비공개법(FARA) 자료를 입수해 6일 보도했다.
정치계·기업체 등이 필요로 하는 연설문 작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업체인 웨스트윙라이터스는 주미한국대사관과 이 대통령의 △미 상공회의소 연설문 △미 의회 합동연설문 △국빈방문 관련 발언문 작성 등 크게 3건의 계약을 맺었고, 이런 내용을 지난달 19일 미 법무부에 신고했다. 계약서를 보면, 이 회사는 3개 연설문 초안 작성 및 초안에 들어갈 전략적 방향을 제시하는 메모를 주미한국대사관에 제공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 대통령은 이 회사가 작성한 초안을 토대로 연설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이 대통령이 의회 합동연설 때 6·25 참전 의원들을 거론하며 이들의 희생에 감사를 표한 것도 이 회사의 충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이 연설 뒤 참전용사 출신 의원들에게 거수경례를 해 박수를 받았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양정철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은 이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연설은 외교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과 가치뿐 아니라 국익이 담겨야 하는데, 이를 외부 영리업체에 의뢰해 초안을 작성하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면서도 “(웨스트윙라이터스에 의뢰한 것은) 주미한국대사관이 청와대 안팎의 여러 의견을 듣는 한 과정이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앞서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도 2009년 미 의회 연설 당시 이 회사에 4만달러를 주고 ‘맞춤형 연설문’을 받았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이정애 안창현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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