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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잡스 컬트’ 신드롬

등록 2011-10-07 21:39

집단적 애도 물결 왜?
자수성가 삶에서 ‘변화의 기회’ 희망 얻어
사생활 철저히 가려진 ‘신비주의’도 한몫
기존 방식 부정한 ‘다른 생각’ 갈망도 담겨
한때 ‘그’는 자신의 딸조차 부정했던 ‘비정한 아빠’였다.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조차 쫓겨났던 ‘실패자’였고, 기부엔 인색하고 자사제품(아이폰)을 생산하는 공장(중국 폭스콘)의 열악한 노동환경엔 눈감았던 ‘철저한 자본주의자’였다. 만화 <심슨네 가족>의 주인공 호머 심슨은 그를 ‘스티브 맙스’(Mobs·폭력배)라 불렀고, “말이 좋아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지 사실은 ‘환불은 안 된다’(No Refund)란 얘기 아니냐”며 비꼬기도 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다음날인 6일(현지시각)에도 전세계 온·오프라인에서 계속되고 있는 ‘잡스앓이’에선 이런 이전의 논란은 찾아보기 힘들다. 죽음이 모든 흠결을 덮어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그의 죽음에 ‘컬트’(숭배)에 가까운, 끝없는 애도가 바쳐지는 배경을 ‘지금 세대’와 시대의 특성에서 찾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시인이자 칼럼니스트인 메건 오루크는 <뉴요커> 온라인판에 이런 ‘집단적 애도’의 배경에는 다소 관음증적이며 감상적인 성격의 ‘슬픔’이 있다고 설명한다. 자신들의 상실감을 표출할 출구가 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함께 잡스를 잃은 슬픔을 공유하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잡스의 죽음이 여느 유명인사들의 죽음보다 더 큰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잡스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 안에 있을 수도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회사(애플)의 대표이면서도 ‘아웃사이더’의 면모를 지닌 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그의 자수성가한 모습을 통해서 ‘살아가는 동안 진정한 변화의 기회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워싱턴 포스트>는 1990년대 초반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 대거 추모의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이 세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초기 매킨토시 컴퓨터에 플로피 디스크를 꽂아 ‘오리건 트레일’ 같은 어드벤처 게임을 하고, 애플 컴퓨터로 가득한 학교 컴퓨터실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아이맥 G3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잡스가 만든 제품들을 사용하며 자라왔다. 애플의 제품 하나하나가 자신들의 인생의 ‘마일 표지판’과 다름 없는 만큼, 추모의 의미가 더 각별하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의 대명사’면서도 잡스의 사생활이 철저히 ‘신비주의’에 가려져 있다는 점이 ‘잡스 컬트’ 현상을 키운 원인이라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분석했다. <잡스처럼 일한다>의 저자 린더 카니는 “잡스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나 사생활에 대해 많이 얘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잡스의) 팬들이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라며 “잡스가 신비에 싸일수록 사람들은 그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투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의 마이아 앤더슨 교수는 ‘잡스가 정부 지출과 주식시장의 추이, 향후 금리를 얼마나 예측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으로 실험을 진행했는데, “잡스가 미스터리한 인물이라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잡스의 예측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며 이런 견해를 뒷받침했다.

잡스앓이의 배경을 ‘권위의 상실’이라는 사회적 배경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브랜드 컨설턴트 조너선 가베이는 잡스가 ‘다르게 생각하라’는 슬로건을 외쳤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사람들은 기존의 방식을 부인하며 뭔가 다른 방식으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갈망하고 있다”며 “안락함을 부정하는 잡스의 이런 생각이 오늘날 대단히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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