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주코티공원’ 원래 이름 되찾아
“우리는 할수 있는 만큼 오래 머물것”
“우리는 할수 있는 만큼 오래 머물것”
미국 뉴욕 월가의 뉴욕증권거래소 근처에 있는 면적 3100㎡의 이 공원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에 지친 금융인들이 블랙베리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는 모습이다. 서류가방을 뒤적거리는 비즈니스맨 모습을 한 채 공원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더블 첵’이라는 이름의 동상은 이 공원의 속성을 한눈에 보여준다.
하지만 이 공원은 이제 금융기업의 부패와 탐욕에 항의하는 ‘해방구’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곳은 바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가 텐트를 치고 머물고 있는 주코티 공원이다. 주변에 빼곡한 초고층빌딩 사이에서 한줄기 숨통을 틔울 수 있는 공간이었던 이곳이, 전세계를 덮치고 있는 금융불안과 재정위기에 몸살을 앓는 시민들의 해방구가 된 것이다.
시위가 3주째 진행되면서 주코티 공원은 ‘제 이름’을 찾고 있다. 원래 ‘리버티 플라자(자유 광장) 공원’이었던 이곳은 2006년 이 공원의 땅 소유자인 ‘브룩필드 부동산’의 회장이었던 존 주코티의 이름을 따 개명됐다. 그가 9·11 테러 이후 엉망이 된 이곳을 재정비하는 데 돈을 댄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위대는 이곳을 ‘리버티 공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부동산 재벌의 이름에서 다시 ‘자유 광장’이라는 이름을 되찾은 것은 상징적인 일이다.
처음의 무질서했던 시위대의 모습은 점차 조직화되고 있다. 시위대는 기부받은 음식을 먹고 휴대용 발전기로 전기를 만들어 컴퓨터를 사용한다. 그들은 ‘점령당한 월스트리트 저널’이라는 자체 신문도 발간하고, 간이병원까지 갖췄다. 거의 완벽하게 장기화 채비를 갖춘 셈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사태 초기인 17일(현지시각)까지만 해도 주코티 공원의 시위에 대해 묻자 “미국 시민에게는 집회의 자유가 있다”며 “우리는 (시위를 할) 장소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고 여유를 부렸다. 하지만 시위가 확산되면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리고 있다. 뉴욕 경찰이 지난 2일 브루클린 브리지에서 700여명을 무차별 연행하며 지나친 대응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것도 이런 당혹감의 반영으로 보인다.
시위에 참가한 키라 모이어-심스(19)는 “시청 사람들은 우리가 곧 떠날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오래 머무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주코티 공원은 ‘아랍의 봄’을 이끈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처럼 ‘미국의 가을’을 이끄는 새로운 바람의 상징물이 되고 있다.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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