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신원확인 제임스, ‘1629번째 희생자’로
신체부위 흩어지고, DNA 자료도 부족해 ‘난항’
신체부위 흩어지고, DNA 자료도 부족해 ‘난항’
지난 24일 미국 뉴욕 시립검시국은 10년 전에 숨진 신원을 알 수 없는 주검 유해에서 디엔에이(DNA) 감식을 통해 망자의 신원을 밝혀냈다. 사망 당시 서른 살의 패기 넘치고 유망한 정보통신(IT) 전문가 어니스트 제임스였다.
2001년 9월11일 아침, 제임스는 여느 때처럼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했다. 탁 트인 전망을 내다보며 심호흡을 했을 그는 조금 뒤면 알카에다에 납치된 여객기 2대가 뉴욕의 트레이드마크인 초고층 쌍둥이 빌딩으로 잇따라 돌진할 것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임스의 직장동료이자 약혼녀였던 모니크 키스는 방송에 “제임스는 모든 면에서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사람이었고, 대단한 유머 감각에 활기가 넘쳤다”고 돌이켰다. “이제야 그의 신원이 밝혀져 기쁘고 뭔가 매듭이 지어졌다는 느낌이 든다”는 키스의 말에는 잃어버린 약혼자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홀가분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의 유해는 10년 만에 유가족인 어머니와 누이동생에게 전달됐다.
제임스는 9·11 테러로 무역센터에서 숨진 2753명 중 신원이 확인된 1629번째 희생자로 기록됐다. 세계무역센터 사망자 중 나머지 41%는 아직도 현장에서 수습된 유해로부터 신원이 밝혀지지 않아 ‘사망의 물증’이 없다는 얘기다.
뉴욕 검시국의 법의학 전문가 메히틸트 프린츠(53)는 지난 26일 검시실을 찾은 <아에프페>(AFP) 통신 기자에게 “우리가 수습한 유해 조각들만 2만1817개에 이른다”며 “수많은 희생자들의 신체가 여러 부위로 잘려져 흩어진 탓에 신원 감식이 어렵고 더디다”고 말했다. 엄청난 폭발 충격과 고열의 화염, 건물 붕괴 등 당시의 참상을 처참하게 훼손된 유해들이 말없이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뉴욕 검시국은 엄격한 보안과 위생 상태를 유지한 채 뼛조각만 6314개에 이르는 유해들에서 희생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실마리를 찾으려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테러 직후엔 주로 주검의 치아 상태와 지문 대조 등 전통적 방법에 의존했고, 지금은 유전자 감식 등 첨단과학이 총동원된다.
그러나 디엔에이 감식 결과가 나온 유해 조각의 대부분은 이미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의 것으로 밝혀지기 일쑤다. 유가족들이 유전자 샘플을 제공하지 않았거나, 생체정보 자료가 아예 없는 불법이주자들이 사망한 경우에도 신원 확인은 불가능하다. 2006년 이후 지금까지 유해 감식으로 신원 확인에 성공한 사례는 30건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올해엔 제임스를 포함해 2건, 지난해엔 아예 없었고 2009년에도 2건에 그쳤다. 희생자에 대한 애도심과 끈질긴 인내심 없이는 감당하기 힘든 작업이다.
프린츠 박사는 “희생자들은 (법적으로) 사망 증명이 끝났으므로 유해 감식이 법적인 의무는 아니지만, 도적적인 책무로 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신원이 확인된 유해를 수습한 유가족들이 너무나 고마워하는 것을 보면 이 일은 분명히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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