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의사회 “빈라덴 체포작전에 예방 활동 타격”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오사마 빈라덴의 정확한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파키스탄에서 지난 3~5월 펼쳤던 ‘위장 예방접종 작전’이 역풍을 맞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와 국제 보건·의료단체들은 이런 위장작전 탓에 합당한 예방접종 활동마저 타격을 입게 됐다며 일제히 비난했다고 영국 <가디언> 등이 14일 보도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이날 성명에서 “의료행위의 심각한 조작”으로 생명을 구하는 예방접종 활동이 위협받게 됐다며 미 중앙정보국을 비난했다. 파키스탄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의학적 임무는 정치와 군사적 목적을 위한 속임수에 이용되지 않아야 하며, 의료계 종사자들이 의료윤리에 위배되는 활동을 하도록 강요받지도 않아야 한다”고 밝혔으며, 세계보건기구(WHO)도 “이런 일로 인해 파키스탄 어린이들이 소아마비·홍역 등에 대한 예방접종을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게 되길 희망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 12일 열린 파키스탄 보건당국 관계자들의 회의에선 소아마비 발병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파키스탄에서 이번 일로 예방접종 활동이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들이 나왔다. 가뜩이나 파키스탄 북서쪽을 장악하고 있는 탈레반과 알카에다 반군이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며 예방접종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예방접종 활동을 ‘서구의 침입’을 위한 구실로 보고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재 미 중앙정보국은 위장 예방접종 작전 시행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고위관계자는 <가디언>에 빈라덴 체포의 중대성을 감안해 예방접종이라는 위장작전이 펼쳐진 게 사실이라고 밝히면서 “늘 이뤄지는 일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국경없는 의사회 등의 비난에 대해 “진짜 의료 전문가에 의해 실제 (B형 간염) 예방접종 활동이 이뤄졌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디언>은 아보타바드 지역을 확인해본 결과, 제대로 된 예방접종이 이뤄졌다는 주장도 거짓이라고 보도했다. B형 간염 예방접종은 모두 3차례 이뤄지는데, 나와셰르 지역에선 지난 3월 첫번째 접종 이후, 한달 뒤에 해야 하는 두번째 접종 때 의료진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역 당국 관계자와 주민들은 이 의료진이 대신 빈라덴이 살았던 빌랄타운으로 갔다고 신문에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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