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
‘정보공개’ 새 역사 쓴 위키리크스
진정한 ‘정보공개 혁명’의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던 비밀정보가 온라인상에서 마구 쏟아지고 있다. 올해 들어 세차례의 대규모 비밀정보 공개로 전세계 매스컴의 총아가 된 내부고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대표적이다.
보수적 경제잡지인 <포브스>조차 최신호에서 위키리크스의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를 “‘비자발적 투명성’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예언자”라고 평가했다. 과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내부고발, 즉 ‘내부고발 2.0’ 시대가 온 것이다.
지난 세기의 대표적 내부고발 사례로는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논란에 기름을 부은 1971년 펜타곤페이퍼 유출사건, 1974년 닉슨 대통령에게 미국 역사상 첫 임기 중 사임이라는 결과를 안겨준 워터게이트 사건을 들 수 있다.
위키리크스, 인터넷 통해 방대한 비밀정보 퍼뜨려
펜타곤페이퍼·워터게이트 사건과 다른 내부고발
언론공조로 효과 극대화…비밀유지법 등 도전받아 1945년부터 1967년까지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의 역할을 다룬 펜타곤페이퍼는 1967년 당시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의 책임 아래 작성된 1급기밀문서로,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랜드연구소 연구원 대니얼 엘즈버그가 ‘잘못된 (베트남)전쟁’을 막겠다는 일념에서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 유출한 사건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의 권력남용 스캔들로, 추문마다 따라다니는 ‘게이트’라는 명칭과 내부제보자의 또다른 명칭인 ‘딥스로트’라는 용어를 낳게 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들 사건과 위키리크스의 정보공개의 가장 큰 차이는 엘즈버그가 지난 7월 위키리크스의 아프간전 문건 공개 당시 지적했듯이 “펜타곤페이퍼에 비해 규모가 훨씬 방대하고, 인터넷 덕분에 전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됐다”는 점이다. 내부고발자가 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그러나 전세계인이 과거에 비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하게 됐다. 지난 7월 아프간전 관련 국방부 비밀문건 9만여건, 10월 이라크전 비밀문건 40만여건, 그리고 이번에 공개된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 25만여건 등 문서로만 따지면 한 트럭 분량이 넘는다. 하지만 디지털화된 이들 문서는 손가락 크기의 조그마한 메모리스틱 하나로 빼돌리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또다른 차이는 이른바 딥스로트로 불리는 내부제보자가 언론을 직접 찾아다녀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됐다. ‘정보 투명성 근본주의 단체’인 위키리크스가 그 몫을 대행한다. 위키리크스는 정보를 넘겨받는 순간 내부제보자를 알 수 있는 단서들을 모두 지우는 제보자 보호방침에 철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뉴욕 타임스>와 <가디언> 등 선택받은 세계 유수 언론들이 위키리크스와 사전협의와 공조 속에 위키리크스의 ‘대변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도 폭로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정보공개가 이뤄지는 똑같은 인터넷 공간에선 언론·출판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열띤 논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또 정보 공개의 1차적 피해를 입은 미국 정부 등이 강력한 처벌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간첩죄, 비밀유지에 관한 법률 등 지난 세기의 규제법들이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됐다. 위키리크스는 3일 트위터를 통해 서버 차단 등 조여오는 탄압과 관련해 “위키리크스의 정보공개 운동은 세계 최초의 전지구적인 사미즈다트 운동”이라고 말했다. 사미즈다트 운동은 스탈린 사후 소련 및 동유럽에서 공산정권의 탄압에 맞서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왔던 공산권 반체제문학 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자가출판을 뜻하는 사미즈다트는 한번에 4~5부의 복사본을 만들어 배포하면 동지나 동호인들이 각각 4~5부씩 만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이다. 금서였던 솔제니친의 <암병동>이 베스트셀러가 됐던 것처럼 말이다. 위키리크스의 협조 요청을 거부했던 <월스트리트 저널>은 1일 사설에서 “어산지는 미국의 적”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미국 정부는 너무 많은 비밀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정부는 비밀을 더욱 줄이고 더욱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대응이 혁신적 정보기술로 무장한 위키리크스식의 ‘사미즈다트 운동’을 막을 수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위키리크스, 인터넷 통해 방대한 비밀정보 퍼뜨려
펜타곤페이퍼·워터게이트 사건과 다른 내부고발
언론공조로 효과 극대화…비밀유지법 등 도전받아 1945년부터 1967년까지 인도차이나에서 미국의 역할을 다룬 펜타곤페이퍼는 1967년 당시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의 책임 아래 작성된 1급기밀문서로,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랜드연구소 연구원 대니얼 엘즈버그가 ‘잘못된 (베트남)전쟁’을 막겠다는 일념에서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 유출한 사건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의 권력남용 스캔들로, 추문마다 따라다니는 ‘게이트’라는 명칭과 내부제보자의 또다른 명칭인 ‘딥스로트’라는 용어를 낳게 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들 사건과 위키리크스의 정보공개의 가장 큰 차이는 엘즈버그가 지난 7월 위키리크스의 아프간전 문건 공개 당시 지적했듯이 “펜타곤페이퍼에 비해 규모가 훨씬 방대하고, 인터넷 덕분에 전세계적으로 급속히 확산됐다”는 점이다. 내부고발자가 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그러나 전세계인이 과거에 비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하게 됐다. 지난 7월 아프간전 관련 국방부 비밀문건 9만여건, 10월 이라크전 비밀문건 40만여건, 그리고 이번에 공개된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 25만여건 등 문서로만 따지면 한 트럭 분량이 넘는다. 하지만 디지털화된 이들 문서는 손가락 크기의 조그마한 메모리스틱 하나로 빼돌리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또다른 차이는 이른바 딥스로트로 불리는 내부제보자가 언론을 직접 찾아다녀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됐다. ‘정보 투명성 근본주의 단체’인 위키리크스가 그 몫을 대행한다. 위키리크스는 정보를 넘겨받는 순간 내부제보자를 알 수 있는 단서들을 모두 지우는 제보자 보호방침에 철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뉴욕 타임스>와 <가디언> 등 선택받은 세계 유수 언론들이 위키리크스와 사전협의와 공조 속에 위키리크스의 ‘대변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도 폭로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정보공개가 이뤄지는 똑같은 인터넷 공간에선 언론·출판의 자유의 한계에 대한 열띤 논쟁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또 정보 공개의 1차적 피해를 입은 미국 정부 등이 강력한 처벌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간첩죄, 비밀유지에 관한 법률 등 지난 세기의 규제법들이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됐다. 위키리크스는 3일 트위터를 통해 서버 차단 등 조여오는 탄압과 관련해 “위키리크스의 정보공개 운동은 세계 최초의 전지구적인 사미즈다트 운동”이라고 말했다. 사미즈다트 운동은 스탈린 사후 소련 및 동유럽에서 공산정권의 탄압에 맞서 꿋꿋하게 명맥을 이어왔던 공산권 반체제문학 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자가출판을 뜻하는 사미즈다트는 한번에 4~5부의 복사본을 만들어 배포하면 동지나 동호인들이 각각 4~5부씩 만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이다. 금서였던 솔제니친의 <암병동>이 베스트셀러가 됐던 것처럼 말이다. 위키리크스의 협조 요청을 거부했던 <월스트리트 저널>은 1일 사설에서 “어산지는 미국의 적”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미국 정부는 너무 많은 비밀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정부는 비밀을 더욱 줄이고 더욱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대응이 혁신적 정보기술로 무장한 위키리크스식의 ‘사미즈다트 운동’을 막을 수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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