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보고” “완벽한 전쟁사” 위상 달라
전쟁기밀 폭로·반전 여론 결집 ‘닮은꼴’
전쟁기밀 폭로·반전 여론 결집 ‘닮은꼴’
25일 위키리크스의 아프간전 군기밀문서 공개가 39년전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의 흐름을 바꿔놓았던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의 제2탄이 될 수 있을까?
펜타곤페이퍼는 작성 과정에 참여했던 대니얼 엘스버그(당시 MIT 부설 국제연구소 수석 연구원)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1971년 이 문서를 <뉴욕타임스>와 이후 <워싱턴포스트> 등 언론에 넘겨줘 세상에 알려졌다.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책임 아래 작성된 이 보고서는 2차대전 이후부터 1968년까지 22년간의 미국의 베트남 개입의 비밀역사를 다룬 1급 기밀 문서이다. 폭로를 계기로 미국의 베트남 개입의 도화선이 됐던 통킹만사건(1964년)이 조작된 사건이었음이 밝혀지면서 반전여론이 더욱 확산돼 끝내 미국의 베트남 철수를 불러왔다.
피상적으로 보면, 39년의 시차를 둔 군사비밀문서 공개는 상당한 닮음꼴을 하고 있다. 방대한 비밀문서들은 미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혀온 전쟁양상보다 보다 암울한 현실을 드러낸 공통점을 갖고 있고, 반전론자들과 회의론자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문서가 갖는 위상엔 차이가 있다. 펜타곤페이퍼가 백악관과 국방부, 국무부, 중앙정보국 등의 최고급 기밀들을 근거로 작성된 3권 분량의 완벽한 전쟁사 문건이다. 통킹만사건 뿐 아니라 라오스 캄보디아에 대한 비밀폭격 등 엄청난 기밀사항을 담고 있었다. 반면, 위키리크스의 문건들은 2004년부터 2009년말까지 6년간에 걸친 9만건의 방대한 분량이지만, 일관되게 정리된 문건이라기보다는 느슨하게 연관된 현장보고들의 집합체 수준이다. 이 때문에 비영리단체인 미국과학자연맹(FAS)에서 정부비밀에 관한 프로젝트를 책임맡고 있는 스티븐 애프터굿 국장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과 반대되는 진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순진하고 웃기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베트남전에 대한 진실을 속이고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펜타곤페이퍼과는 달리 이번에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문서들은 단순명쾌하게 통일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위키리크스의 폭로 프로젝트에 동참했던 미국과 영국, 독일의 세 언론들이 동시보도에 나서면서 저마다 강조점이 달랐던 것도 이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파키스탄 군부와 정보기관의 이중플레이에 강조점을 뒀고, <가디언>은 미군 및 나토군의 민간인 학살에 초점을 맞췄다. <슈피겔>은 독일 정부가 아프간 주둔 독일군 전황에 대해 오도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펜타곤페이퍼 공개 당시 정부의 공개 금지명령에 맞서 법정다툼에서 승리해 공개하는 노력을 보였지만, 이번엔 백악관 협력해 ‘작전수행에 해악이 되는’ 일부 문서 공개를 보류하도록 해달라’는 백악관의 요구를 위키리크스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미 국방부가 문서유출자에 대한 수사를 진행중이지만, 미 행정부도 이들 문서 공개를 적극적으로 저지하지는 않았다. 39년전 펜타곤페이퍼 공개를 막으려던 백악관의 노력이 오히려 공개의 극적 효과를 배가시키는 반작용을 낳았던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위키리크스 문서들은 일부 미공개된 사실들을 폭로하고 보다 혼란스런 아프간전황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의 미국 정부의 공식입장이나 정부정책과 대체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새 아프간정책을 완전히 뒤바꿀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그러나 펜타곤페이퍼의 당사자인 엘스버그는 26일 <워싱턴포스트>와 회견에서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놨다. “문건들을 읽어보면, 3만명을 증파하고 수십억달러를 더 투입해서 지난 9년간 3천억달러를 쏟아부었던 전쟁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위키리크스 유출은 주간지 <타임>이 27일 보도한 ‘미 역사상 10대 기밀유출 사건’ 가운데 1위로 꼽히기도 했다. 1974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사임을 불러온 워터게이트 스캔들, 19세기 미국-멕시코 전쟁을 종결시킨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 스캔들 등이 뒤를 이었고, 펜타곤 페이퍼 유출은 8번째 올랐다. ♣H6s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위키리크스 유출은 주간지 <타임>이 27일 보도한 ‘미 역사상 10대 기밀유출 사건’ 가운데 1위로 꼽히기도 했다. 1974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사임을 불러온 워터게이트 스캔들, 19세기 미국-멕시코 전쟁을 종결시킨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 스캔들 등이 뒤를 이었고, 펜타곤 페이퍼 유출은 8번째 올랐다. ♣H6s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