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호의사려 “양귀비밭 건드리지 말라” 명령
‘아편 근절해 자금줄 차단’ 기존 태도 바꿔
‘아편 근절해 자금줄 차단’ 기존 태도 바꿔
모든 것이 흐릿하기만 한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탈레반의 최대 자금줄인 아편에 대한 미군의 태도까지 바꿔놓고 있다.
탈레반의 본거지인 헬만드주 마르자를 장악한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연합군 지휘부가 현지 주민들의 민심을 얻기 위해 전례 없이 아편 근절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이 20일 보도했다. 탈레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양귀비 재배 및 아편밀매 차단을 외쳐온 지금까지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다.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사령관의 방침은 나토군의 한 고위관리가 명료하게 말했듯이 “미군은 더이상 (아편을) 뿌리뽑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양귀비 재배는 가난한 아프간 주민들의 주요 생계수단이다. 전세계 아편의 90% 이상이 아프간에서 생산된다. 특히 탈레반의 거점인 남부 헬만드주 마르자는 주민의 70%가 양귀비 재배로 먹고산다. 지난달 이 곳을 점령한 미 해병대는 양귀비밭을 건드리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매크리스털 사령관의 핵심참모장인 제프리 이거스 장군은 “마르자는 특수한 경우다. 우리는 민심을 얻으려는 이들의 생계를 짓밟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아프간 주둔 미군은 그러나 아프간 정부의 아편 근절 노력은 지지한다는 게 공식입장이다.
미군의 이같은 접근 변화는 아프간 현지인들의 민심을 얻지 않고는 탈레반과의 전쟁에서 한발짝도 진군하기가 쉽지 않은데다가, 대다수 주민들의 유일한 수입원인 양귀비 재배를 다른 대체수입원이 없는 상태에서 뭉개버릴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유엔도 어쩔 수 없이 미군의 입장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유엔마약범죄국(UNODC) 아프간 담당관인 장뤼크 르마이외는 “양귀비밭 옆을 (그냥) 지나치는 연합군의 모습은 생경하다”면서도 “이처럼 특수한 상황에서 아편 근절을 연기하는 것은 합리적 판단”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정부에선 찬반이 엇갈린다. 아프간 마약부의 줄마이 아프잘리 대변인은 “조만간 수확돼 전세계 사람을 죽이는 독으로 변할 양귀비 밭을 합법적인 군대가 그냥 두고 지나치는 상황을 어떻게 내버려둘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양귀비 재배 묵인은 탈레반이 우리를 등 뒤에서 죽일 수 있도록 재정 확보를 허용하는 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강력한 아편 근절론자인 헬만드의 굴랍 망갈 주지사조차, 양귀비 수확철을 앞두곤 마르자 지역을 아편단속 예외지역으로 인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주민들이 미군과 탈레반의 전투로 너무나 큰 고통을 겪었으며, 양귀비 근절은 내년에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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