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지인데다 구호활동 함께
1975년 12월, 미국의 젊은 엘리트 부부 한 쌍이 난생 처음 본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두 달 전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의 신혼여행길이었다. 그로부터 35년 뒤, 이국적 풍취의 아이티는 최악의 지진 피해로 생지옥으로 변했고, 당시의 신혼부부는 아이티 구호에 발벗고 나섰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현 국무장관(사진) 이야기다.
지난주 오세아니아를 순방 중이던 클린턴 국무장관은 아이티 지진 소식에 나머지 일정을 취소하고 급거 귀국한 뒤 16일(현지시각) 아이티를 찾았다. 애초 혼란상황을 우려해 공항 구역 안에서의 기자회견만 할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지진 현장에서 직접 피해 상황을 살피고 구호 활동을 챙겼다. 남편인 빌 클린턴도 18일 유엔 아이티 특사 자격으로 포르토프랭스를 방문해 아이티 정부 당국자들과 피해복구 방안을 논의하고 구호품을 전달할 계획이다. 빌 클린턴은 지진발생 이후 잇따라 신문기고·방송출연을 하며 아이티에 관심을 호소했고,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함께 기부웹사이트를 개설했다.
클린턴 부부의 아이티에 얽힌 인연과 감상은 각별하다. 신혼여행의 추억이 새겨진 장소가 파괴됐다는 소식에 빌은 “개인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신혼여행 이후로도 클린턴 부부가 아이티를 수차례 방문했고, 자택을 아이티풍으로 장식하기도 했으며, 힐러리는 언젠가 “아이티에 홀린 가족이 있다”고 털어놨을 정도라고 전했다.
1990년 합법선거로 선출됐다가 쿠데타로 쫓겨났던 아이티의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1994년 유엔과 손잡고 권좌에 복귀시킨 것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었다. 이후 다시 아리스티드가 쫓겨나는 과정에서 클린턴의 역할에 대해 평가는 엇갈리지만, 아리스티드를 영웅으로 아직도 지지하는 많은 아이티 빈곤층들에게 클린턴은 은인으로 인식된다. 그는 지난해에도 아이티의 가난한 아이들을 찾아 방문하는 등 아이티에 각별한 관심을 쏟아왔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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