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정보원이 아프간 CIA테러
준 군사조직 변신한 CIA 역풍
‘그림자 전쟁’ 전면 재고 불가피
준 군사조직 변신한 CIA 역풍
‘그림자 전쟁’ 전면 재고 불가피
미국의 대테러 공작이 제 발등을 찍었다. 2009년 마지막날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7명을 숨지게 한 아프가니스탄 내 시아이에이 비밀기지의 폭탄테러 용의자는 미국이 현지 정보원으로 활용해온 파키스탄인이라고 미국 <에이비시>(ABC)방송이 2일 기지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테러용의자는 채프먼 비밀기지에 수차례 방문한 적이 있으며, 테러 당일에도 기지 보안책임자인 아프간 출신 아르가완과 함께 몸수색 없이 기지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가완은 당시 테러로 숨졌다. 이는 파키스탄 탈레반이 이번 테러는 이중간첩으로 변절한 CIA 정보원을 통해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주장한 것과도 일치한다.
미국의 아프간 작전의 심장부를 파고든 이번 테러는 미 중앙정보국의 탈레반과 알카에다 대응능력에 심각한 타격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전직 정보관리들은 이번 테러로 최고 수준의 CIA 요원들이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본거지에서 수십년간 축적해온 정보를 잃게 됐다고 지적했다. 오사마 빈 라덴 담당팀을 이끌었던 전직 정보관리는 “알카에다에 대한 전문지식은 전체정보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며 “이번 사건은 엄청난 손실”이라고 말했다.
CIA의 ‘그림자 전쟁’도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이번 테러공격을 당한 채프먼 기지도 공식적으론 아프간 재건사업을 위한 민간시설이었다. 23년 경력의 미 중앙정보국 요원인 개리 번스턴은 3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에 “이번 테러는 시아이에이를 진퇴양난에 빠뜨렸다”며 “대러시아 작전을 수행하던 옛날에는 이중첩자가 있을 경우 거짓정보를 주는 게 최악이었지만, 오늘날 이중첩자는 면전에서 폭탄을 터뜨린다”고 말했다. 정보수집을 위한 현지인 활용이 더욱 어렵고 위험해졌다는 얘기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테러 전문가인 토마스 샌더슨은 3일 <아에프페>(AFP) 통신에 “이번 테러는 아프간의 모든 현지인들을 매우 의심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아주 큰 문제”라며 “미국의 아프간 작전에 대한 사고방식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CIA가 최근 몇년새 준군사조직으로 변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CIA는 파키스탄에서 무인비행기를 활용한 미사일공격을 하거나 예멘 정부의 알카에다 소탕전을 지원하는 등 사실상 준군사작전에 개입해왔다. 이번에 테러공격을 받은 CIA 아프간 지부도 무장반군들에 대한 정보수집 뿐 아니라 지도자 암살 등의 임무를 수행해왔으며, 최근엔 카불의 미국대사관을 벗어나 테러단체에 더욱 가깝게 접근하기 위해 아프간 남부와 동부지역에 진지를 구축해왔다. <뉴욕타임스>는 이처럼 정보요원들을 전쟁의 최전선으로 내모는 것은 엄청난 위험을 수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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