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만 헤집어” “모두가 알게 해야”
관타나모 수감자 5명 뉴욕법원 회부에 찬반 팽팽
관타나모 수감자 5명 뉴욕법원 회부에 찬반 팽팽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들을 뉴욕의 민간법정에 세우겠다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방침이 미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 제1호(관타나모 기지 폐쇄)의 이행 여부, 나아가 미국 사회가 ‘뉴욕 재판’을 실행할 수 있는지 자체가 중대한 법적·정치적 심판대에 오른 모양새다. 앞서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지난 13일 쿠바의 미국령 관타나모 해군기지에 수감중인 테러 용의자 5명을 뉴욕 연방법원에서 재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사회는 거센 찬반양론에 휩싸였다. 당장 희생자 유가족들의 의견부터 팽팽히 엇갈린다.
9·11 당시 소방관 아들을 잃은 안네 이엘피는 정부 방침이 알려진 직후 <시엔엔>(CNN)에 “정부에 매우 실망했다. 우리는 9·11 테러(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없다. 9·11 용의자들의 재판은 관타나모의 군사법정에서 끝나야 한다”고 말했다. 2001년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루돌프 줄리아니는 15일 보수 성향의 <폭스 텔레비전>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주범인 모하메드 등은 전범이므로 군사법정에 세워야 한다”며 “오바마 정부가 역사적 실수를 되풀이한다”고 비판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9·11 가족모임’ 등 상당수 유가족들은 민간법정에서의 ‘투명한 재판’을 환영하고 나섰다. 발레리 루즈니코브스카는 “뉴욕에선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세상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다”며 유가족들의 재판 참관을 지지했다. 양자를 잃은 존 레이눙도 “세상이 법대로 움직이길 바란다면, 세상 사람들이 지구촌의 슬픔을 공정하게 탄원하길 바란다면, 우리 스스로 그렇게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엔엔>은 희생자 유가족 수십명이 15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에릭 홀더 법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에게 테러 용의자들의 뉴욕 재판을 촉구하는 편지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정치권도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15일 <시비에스>(CBS) 방송의 일요 대담 프로그램인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한 공화당 중진인 피트 혹스트라 의원(하원 군사위원회)은 “우리는 지금 비극의 현장인 뉴욕으로 되돌아가 상처를 헤집고 있다”며 “뉴욕에서 ‘재판 서커스’가 진행되는 몇 년 동안 그 상처는 벌어진 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상원 법사위원장인 패트릭 레이히 민주당 의원은 “뉴욕 재판은 미국의 강인함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미국은 테러리스트를 법정에 세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이 부러워하는 사법체계를 갖고 있다”며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말했다.
일리노이주의 1급 교도소가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이감할 유력한 후보 시설로 거론되면서 논란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민주당 소속인 패트릭 퀸 일리노이 주지사와 리처드 더빈 상원의원은 이미 관타나모 수용자들의 톰슨교도소 수감을 인준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16일 보도했다.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옮겨올 경우 해당 지역에 32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첫 4년 동안만 최대 10억달러의 경제효과가 있을 것이란 추산도 나왔다. 그러나 일리노이주에 지역구를 가진 공화당 의원들은 15일 오바마 대통령에게 톰슨교도소 이감을 반대하는 편지를 보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